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 집회’로 탄핵을 이뤄냈다고 자축하는 모습이 보인다. 서울시는 이 촛불집회를 평화집회의 모범사례로 보고, 노벨 평화상 추천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평화집회의 상징인 촛불을 들었다고 해서 과연 그것을 비폭력적인 집회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연 집회 측과 경찰 사이의 크고 작은 충돌만이 폭력의 유무를 정의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작년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이날 SNS에는 “교복입고 행진하는데 딸아이가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친구가 성추행을 당해 경찰서에 와있다”, “‘선생이냐, 예쁘다’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한 남성을 봤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또한 헌팅을 목적으로 광장에 나온 남성, 촛불을 든 여고생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다며 접근하려는 남성이 쓴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평소 여성에게 가해지던 폭력이 집회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집회 참가자들과 공권력 간의 무력 충돌은 없었을지 몰라도 많은 여성들은 집회 내부에서 일어난 이러한 폭력으로 인해 오히려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했다. 집회현장은 분명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한편, 집회 내에 ‘페미존’을 만들고 성희롱, 성추행을 막는 ‘페미 자경단’을 운영하며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주도한 ‘페미당당’이라는 단체는 “집회에서 보면 패버리겠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기까지 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이었던 집회현장이 누군가에게는 ‘비폭력’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이런 참가자들이 우리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고, 이들은 비겁하게도 ‘비폭력’을 앞세운 집회 현장에서 약자에게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비폭력’의 이름으로 이번 집회를 보기 보다는 집회과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폭력들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태원
역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