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사상’은 『구약성서』 중 ‘레위기’에 따라 고대 유대 사회에서 실행되었던 ‘희년’을 중심으로 사회정의를 이룩하려는 사상이다. 희년이란 50년마다 돌아오는 특수한 주기로, 희년이 되면 모든 종들은 해방되고 부채가 면제되며, 땅들은 본래의 주인들로 반환되었다. 김유준(연세대학교 교회사) 교수는 ‘광복’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찾아온 광복은 우리민족이 일제로부터 진 모든 부채가 탕감되고,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며, 빼앗긴 땅을 되돌려받는 희년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반환’으로 정리할 수 있는 희년사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토지반환’이다. 김 교수는 ‘토지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예해방 때 자유의 몸이 된 이들이 스스로 옛 주인을 찾아와 다시 노예가 되길 청했다는 일화가 있듯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더라도 ‘토지’라는 생산수단이 없으면 다시 누군가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토지가 반환되어야 ‘노예해방’과 ‘부채탕감’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희년사상을 주창하는 신학자들은 한국사회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주택보급률은 110%를 상회하는데 본인 소유의 집을 가진 국민은 50%에 못 미친다”고 말하며, “상위 1%의 국민이 국토의 50.7%를, 상위 10%의 국민이 국토의 98.3%를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희년사상에 따르면 대다수의 국민이 사실상 ‘경제적 노예’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평가하는 선에서 희년사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년사상은 자연스럽게 ‘지공주의’로 연결된다.
이렇듯 신학자들은 나름대로 ‘신의 율법’을 ‘인간의 삶’에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성경에 ‘사랑’은 500여 회 언급되지만, ‘가난’과 같은 경제 관련 용어는 2,350여 회 언급된다”고 말하며, “신학은 사람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학은 ‘영(靈)’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분명히 지상에 땅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육(肉)’적인 부분까지 포괄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신학은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종교 역시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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