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내 머릿속의 권위주의(한성대신문, 523호)

    • 입력 2017-05-15 00:00

지난 10일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었다. 사회통합, 외교 갈등 조정, 경제문제 해결 등 수많은 문제가 그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가 먼저 말한 것은 권위주의의 청산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서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말하며 대통령이 지녔던 권위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대통령 취임사의 첫머리가 권위주의 청산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 사이에 침투한 권위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권위주의가 다른 문제들을 양산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권위주의가 여러 폐단을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권위 이외에 다른 것들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영화 <터널>을 보면 장관이 등장하자 터널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해야하는 소방대원들까지 청소와 브리핑에 동원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공무원 사회에서 의전을 강조하는 것이 권위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장관이라는 직책이 지닌 권위 앞에서 피해자의 생사나 구조의 효율성 같은 중요한 요소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공무원 사회와 같은 거창한 사례를 들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우리학교에서도 선배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하는 학생들과 인사를 똑바로 안했다고 화를 내는 재학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선배라는 권위에 기댄 대학사회의 잘못된 풍조다. 이번 학기에 한양대학교 새내기새로배움터에서 있었던 얼차려 문제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있었던 재학생 군기 논란 등의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런 폐단이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옮겨간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한쪽은 가해자, 다른 쪽은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뿐 아니라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 역시 권위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종하던 그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다시 권위를 내세우고 강요한다. 우리사회가 지금껏 권위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권위가 곧 권력이라는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세대가 넘어가면 권위주의는 대물림 될 뿐이다.
취임사 나름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하고, 퇴근길에 시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권위주의가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권위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투쟁해야만 권위주의 청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처럼 내 머릿속의 권위주의와 과감하게 결별해야할 때다.

박종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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