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클래식 음악에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에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10대 중반 FM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곡의 클래식 음악으로 인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곡이 바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이다. 특히 3악장의 통통 튀는 듯한 산뜻한 느낌의 선율은 나도 모르게 끝까지 듣게 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곡이었다.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루어지는 협주곡은 대개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악장의 후반부에 독주 연주자가 협연 없이 주제 선율에 근거하여 본인의 기량을 맘껏 뽐낼 수 있도록 하는 “카덴차(Cadenza)”를 배치하곤 한다. 대체로 작곡가가 카덴차가 들어가는 부분을 표시만 하고 비워두면, 연주자는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연주하거나 본인이 미리 작곡 해놓은 카덴차를 연주게 된다. 따라서, 카덴차는 단순히 연주 기교를 과시하는 측면을 뛰어 넘어 연주자만의 깊은 음악 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듣게 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나탄 밀스타인이라는 명바이올리니스트의 엄청난 기교의 카덴차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헨릭 쉐링,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야사 하이페츠, 기돈 크레머, 정경화 등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의 개성 넘치는 카덴차 연주를 비교하며 들어보게 되었고, 특히 우아한 서정미와 품격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쉐링의 연주와 찬란한 개성이 불꽃같이 타오르는 하이페츠의 연주는 잊을 수 없는 명연주였다.
카덴차를 찾아서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하였지만, 각 연주자가 걸어온 인생 이야기까지 찾아 보고 그들의 음악적 노력 및 인간성이 카덴차에 반영되어 연주됨을 느끼게 되면서, 클래식 음악의 깊은 매력에 더욱더 빠지게 되었다.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도 연주자 본인만의 고유한 색깔을 입혀 또 다른 새로운 음악으로 구현해내는 여러 협주곡들의 카덴차를 들을 때마다, 나 자신도 내 삶의 곳곳에서 나만의 찬란한 선율을 품은 카덴차를 연주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후진(IT융합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