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연도: AD 1801
작자: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19세기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다.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기개와 신화적인 위상이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나폴레옹 황제의 창작 당시 세심한 요구를 받아 그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화가 본인이 과거 프랑스대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황제인 나폴레옹의 위용을 드러내는 이 작품이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만약에 이 세상 사람들을 2종류로 나눠보라면, 제각기의 대답이 있겠지만 ‘영웅’과 ‘민중’으로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부름을 받은 특별한 종류의 인간과 그렇지 못한, 모든 시대의 당사자였지만 어느 역사서에도 이름 하나 실리지 못한 평범한 인간들. 전자는 대개 세계사에서 주역으로 대두되나, 후자의 경우는 불과 300여 년 전까지도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돌연 이들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대두되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이렇게 양극단에 놓여있는 두 종류의 인간이 교차하던 시대에, 자신의 작품을 녹여낸 한 명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에 대해 알아보자.
자크 루이 다비드는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예술가이다. 신고전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그는 특유의 영웅적이고 고전적인 작품들로 많은 유명세를 누렸으며, 지금까지도 서양미술사를 논할 때 빼놓으면 섭섭한 걸출한 작품들을 다수 창작한 바 있다.
그는 예술가이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이 덕분에 그는 격랑의 시대라고 표현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었던 18세기 프랑스의 혼란 속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열렬한 공화주의자로서 자코뱅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5년 전에 창작된 작품으로서, 당시 그는 별달리 의도하지 않았으나 후에 혁명을 예고한 작품으로 여겨지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암살당한 혁명가의 죽음을 표현한 <마라의 죽음>은 ‘마라’라는 인물의 영웅적인 모습과 숭고한 희생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동시에, ‘정치 참여로서의 미술’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명작 중 하나다.
이렇게 ‘민중의 정치’에 앞장섰던 그는 결국 프랑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투옥되었으며, 당시 황제로 군림했던 나폴레옹의 정치체제에 협력하고 궁정예술가로 일하게 된다. ‘민중의 예술가’가 ‘영웅의 예술가’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그는 궁정예술가로 일하며 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려낸다. 나폴레옹의 위풍당당함과 영웅적인 기상을 표현한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를 원류로 하는 신고전주의의 역작으로 여겨진다.
일생을 민중과 영웅의 사이를 오가며 예술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 과연 그가 보고 경험했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그조차도 그 답을 위해 평생 헤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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