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칵테일> 문학, 역사와 결혼하다 (한성대신문, 527호)

    • 입력 2017-10-16 00:00
오늘의 역사칵테일
 
작품: 여수장우중문시
연도: AD 612
작자: 을지문덕
 
여수장우문중시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손꼽히는 을지문덕이 창작한 한시이다. 시기적으로 당나라 이전에 창작된 고체시이며, 54구의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1구와 2구의 한문이 각각 대구를 이루고 있고, 1·2구와 3·4구의 상승·하강이 대비되는 억양법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오언시이며, 문학적인 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무인 특유의 기개가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길거리의 누군가에게 돌연 문학과 역사가 분리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는 쉽사리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말끝을 흐릴 것이다. 그 두 개념이 서로 분리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대해 마땅히 이렇다 할 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고 할지라도, ‘문학역사가 결합해 서로의 일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작품은 존재한다. 바로 고구려에서 창작된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가 그것이다.
여수장우중문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이 시는 각각 5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4개 행을 가진 오언사구(五言四句)’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한시(漢詩) 중에서 최고(最古)의 오언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 유명한 살수대첩(薩水大捷)에서 이 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살수대첩은 을지문덕이 수나라의 군대(이하 수군)를 평안북도에 위치한 청천강에서 격퇴한 전투다. 당시 을지문덕은 하루에 7번씩 수군과 전투를 치르고, 거짓후퇴를 반복하며 수군을 지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수군은 평양성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이 상황에서 을지문덕은 수군을 통솔하던 대장군 우중문에게 여수장우중문시를 보낸다. 고색찬연하게 우중문의 지략에 탄복하는 이 시를 읽은 우중문은 을지문덕에게 기만당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둘러 회군하지만 결국 당시 살수로 불리던 청천강을 건너는 도중 고구려군에게 처참하게 도륙 당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305천 명의 수군 중 살아서 수나라에 도착한 병사는 2,7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실 여수장우중문시 자체의 문학적 가치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함축의 미나 미려한 비유 같은 것이 없는 투박한 장수의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규보가 이 시를 후대에 따를 자가 없다고 평할 만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것은 이 시가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사료되기 때문이다. 대국(大國)의 군대를 궁지로 몰아넣고, 시 한 수로 품위있게 대장군을 우롱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혁명(사고와표현 교육과정) 교수는 문학적인 위상은 높지 않으나, 역사적 배경과 함께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여수장우중문시와 살수대첩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역사가 된 문학과 문학이 된 역사, 우리 역사의 한 시대를 장식한 이 시의 가치를 논할 때, 단순히 문학만을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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