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Kidult)’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키덜트란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장난감을 찾는 마니아층을 말한다. ‘키덜트 문화’는 최근 성인들이 다시 ‘장난감’에 관심을 가지면서,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키덜트는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사람과는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피터팬 증후군을 겪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어린이’로 자처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와 다르게 키덜트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마음으로 아기자기하고 재밌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는 원래 순수했다
그렇다면 키덜트는 왜 성인이 되어서도 장난감을 찾는걸까? 곧 튀어나올 듯 생생한 캐릭터가 전시돼 있는 장난감 박물관에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피규어뮤지엄W’의 김혜숙 부관장은 “어른들이 장난감을 찾는 행동에는 ‘동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바쁜 일상에 지쳐있을 때, 순수하게 장난감을 갖고 놀며 이유 없이 재미를 느끼던 과거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바비 인형의 머리카락을 빗기고, 미니카를 조종하며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 말이다. 결국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장난감에서 위안을 얻게 하고, 직접 장난감을 사고,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준까지 이끄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키덜트?
사람들은 장난감에 애착을 가진 사람을 보며 흔히 장난감 ‘덕후’라고 부른다. 만일 당신이 하나의 장난감 종류에 집착하고, 혹은 희소성 있는 장난감을 시리즈별로 수집하고 있다면 당신도 어엿한 장난감 덕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키덜트는 굳이 장난감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는 ‘덕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덕후가 아니라도 충분히 키덜트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인형뽑기를 시작으로 키덜트 세계에 발을 들인 우리학교 강예림(사회과학 1) 학생은 “길을 가다가 애인이 귀여운 ‘무민’ 인형을 뽑아줬다. 그후로 무민이 최고로 아끼는 캐릭터가 됐다”면서 “무민 인형을 책상 위에 나열해두거나 가방에 달고 다닌다. 또 무민 필통이나 무민 피규어와 같은 상품들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고 ‘무민’에 대한 사랑을 뽐냈다. 이처럼 사소한 계기로도 충분히 키덜트 문화에 입문할 수 있고, 애정만 있다면 그렇게 전문적일 필요도 없다.
수집욕을 부르는 마성의 ‘피규어’
조립의 무한 매력 ‘레고’와 ‘프라모델’
프라모델(Plamodel)은 플라스틱이나 금형 재료로 만들어진 부품들을 접착제로 붙여 만드는 조립 모형이다. 프라모델 종류는 로봇과 군함, 자동차 등으로 다양하다. 설명서대로 조립만 하면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프라모델은 매우 정교한 작업을 요구한다. 프라모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손톱보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손이나 칼로 분리해 접착제로 붙인 후, 필요에 따라서는 도색 작업도 해야 한다. 이 작업은 매우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므로, 종종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한 끝에 프라모델 하나를 완성하면 굉장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키덜트들에게 인기가 많다. 프라모델을 살 때도 피규어에 입문할 때처럼 처음부터 복잡한 모델을 선택하기보다는, 단순한 입문자용 모델을 선택해 경험치를 쌓는 것이 좋다. 레고와 프라모델 역시 마니아층이 두텁기 때문에, 조립을 하다 어려운 점이 생기면 블로그나 SNS를 통해 도움을 받기 쉽다. 조금만 찾아봐도 ‘덕후’들이 공유해놓은 고급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을 수집하고 있으면 “유치하고 철없다”는 타박을 듣기 십상이었지만, 이제 당당하게 “전 장난감을 모아요!”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동안 수줍어서 말도 못한 채 혼자 장난감을 수집하고 조립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키덜트 문화를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최근에는 키덜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키덜트 축제가 개최되거나, 피규어뮤지엄, 둘리뮤지엄과 같이 키덜트를 겨냥한 전시장까지 생겨나고 있다.
만약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이 있다면 그 만화의 ‘덕후 모임’에 참여해보자. 만화뿐 아니라 RC카를 조종하고, 로봇을 조립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임도 있다. 소통이 사라진 이 시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어주는 ‘장난감’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들과 나를 이어주는 끈끈한 매개체가 되어줄 지 모른다. 키덜트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당당히 밝히고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소통해보자. 하루하루가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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