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기자’와 ‘쓰레기’를 절묘하게 합성한 이 신조어를 듣는 것은 요즘 세상에선 그리 어렵지 않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부실한 내용, 기초적인 팩트 체크조차 없이 지면에 오르내리는 온갖 이슈들과 편집국의 정치논리에 맞춰 나열되는 활자들! 어떻게 보면 이들에겐 ‘기레기’라는 칭호마저도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기레기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론’이라는 곳에 한걸음 더 다가갈 필요가 있다. 언론사의 수익은 크게 광고비와 구독료로 나뉘는데, 보통 광고비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구독료보다 높다. 특히, 종이신문의 입지가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이 현상은 더욱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온라인 뉴스’의 중요성 역시 부각되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레기’가 탄생한다.
모든 언론사의 온라인 뉴스 사업부는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언론사는 각 기사의 조회 수, 언론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광고의 히트(Hit) 수에 따라 광고 수익을 얻는다. 다만 광고의 히트 수 역시 조회 수와 정비례하기 때문에, 여기서 ‘조회 수’는 언론사에게 있어 절대적인 지표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무언가 새로운 이슈가 발생할 때는 그 이슈에 대한 기사를 얼마나 신속하게 작성해, 포털 사이트에 노출시키느냐가 조회 수를 올리는데 관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해당 기자들은 새로운 이슈가 생성되면 해당 이슈의 키워드를 최대한 많이 우겨넣은 기사를 누구보다 빠르게 타이핑해야한다. 이를 ‘어뷰징(Abusing) 기사’라고 하고, 이슈 선점 대열에 끼어들기 위해 남이 쓴 기사를 베껴오는 것을 ‘우라까이’라고 한다. 기사를 쓰기 위해 어떠한 취재도 하지 않고, 말그대로 ‘기사를 위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작년 공동취재 건으로 한 메이저 언론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언론사 측의 배려로 사무실을 견학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중 온라인 뉴스 사업부를 견학했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TV 2대가 천장에 매달려있었는데, 그 TV는 실시간으로 어느 기사가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지 순위를 매겨 보여주고 있었고, 기자들은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당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한창 이슈가 되고 있었으므로, 조회 수 1위에는 응당 관련 기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기사는 다름 아닌 ‘반전 몸매’ 어쩌구로 시작하는 어떤 모델의 비키니 화보 기사였다.
자본주의의 가증스러운 성적표를 머리 위에 이고 영혼 없이 기사를 써내는 기자들의 모습이라니, 그중 대다수는 언론사에 정식으로 입사한 정기자가 아니라 그저 인턴기자에 불과하다. 물론 언론인으로서의 윤리를 져버린 ‘기레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기자다운 기자’가 되지 못한 채, 언론사의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기레기’라고 통칭하는 것이 정말로 정당할까. 그날 밤, 씁쓸한 술을 목으로 넘기며 속으로 건배를 했다. 기레기를 위하여.
이주형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