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맛없는 맥주를 마시고 살기엔 인생 이 너무 짧다 (한성대신문, 532호)

    • 입력 2018-03-26 00:00
맛없는 맥주를 마시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Life is too short to drink bad beer

시원하고 환상적인 맥주를 맛보기 위해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가. 아직도 홍대, 건대, 이태원에 연연하고 있지는 않은가.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메뉴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면, 발걸음을 돌려 50년 전통의 뚝도시장으로 향해보자. 이곳에 환상적인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는 수제맥 주집이 있다.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뚝도시장 에서 성수제맥주X슈가맨(이하 슈가맨)’의 대표 김성현 씨(37)를 만났다.
 
수제맥주는 김 대표의 인생에 운명적으로 흘러들어왔다. 미술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을 하던 그는 우연히 수제맥주집 인테리어를 맡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해당 점포 사장님과 친분을 쌓게 됐고, 하던 일을 접고 그곳에서 일하게 됐다.
 
수제맥주집에서 3년 정도 일하다 보니, 내 가게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도 처음부터 시장에 점포를 차릴 생각을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가 좋을거라 생각했던 그가 생각을 바꿔 전통시장에 눈을 돌린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창업을 준비하던 중 알게 된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소상공인시장 진흥공단에서 진행하는 이 사업은 전통시장에서 창업하는 청년에게 점포 입점과 홍보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준다. 자금마련에 어려 움을 겪던 그는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기로 결심했다.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전통시장에 수제맥주 집을 차린다고 얘기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이 거기서 되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시장 안에, 누가 온다고 거기서 장사 하려고 하냐며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어요. 내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고, 왠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어디에 있든 수제맥주라는 콘텐츠를 잘 홍보하고 운영해 나가면 위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더 좋은 위치에서 했으면 더 잘 됐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점포 위치를 전통시장으로 정한 뒤, 김 대표 스스로 시장에 오시는 분들이 수제맥주를 먹을 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 역시 수제 맥주집이 전통시장에 있으면 손님이 많이 찾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가게를 열어보니,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수제맥주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수제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 었다.
 
고객층이 굉장히 다양해요. 생각보다 시장 상인분들이 많이 찾아주세요. 주 고객층은 30~40 대예요. 주위에 회사가 많아서 직장인분들이 많이 오세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처음에는 여기 뭐야?’ 하고 왔다가 독특한 가게 분위기에 재미있어 하시고요(웃음). 처음에는 걱정하던 지인들도 이제는 잘 하고 있다고 말해요. 반응이 많이 바뀌었죠.”

'성수제맥주X슈가맨'의 김성현 대표

맥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의 눈은 반짝였다. 맥주집 사장인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요. 어떤 한 종류가 제일 좋다기 보다는 그냥 그날그날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날씨가 좋고 기분이 경쾌한 날에는 가볍고 시원한 맥주가, 우울한 날에는 무겁고 도수가 높은 맥주가 당긴 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맥주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맥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제맥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맥 주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수제맥주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맥주를 자주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맥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어요. 손님들에게 수제맥주에 대해 설명하고, 취향에 맞게 추천해줄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쌓으려고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슈가맨에는 이곳만의 특별한 메뉴가 있다. 시장 음식을 가져다 파는 상생 메뉴. 순대, 통닭, 홍어 등 시장 내 이웃가게 에서 파는 음식을 안주로 제공하는 것이다. ‘상생메뉴가 탄생하게 된 전말은 이렇다.
 
메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맥주 정보는 빠삭하지만, 안주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거든요. 간단한 게 뭐가 있을까 많이 찾아봤지만, 생각해낸 건 겨우 감자 튀김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맥주를 마시다가 우연히 옆 가게에서 파는 순대를 사먹게 됐어 요. 맥주와 순대라는 새로운 조합이 나쁘지 않더 라고요. 이웃가게에서 음식을 가져다 먹는 게 시장 점포만의 특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메뉴에 반영하기로 했어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근처 음식점을 찾아가 음식을 가져다 팔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러자 대부분의 상인이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는 저희 점포에서 소주나 일반 맥주를 팔지 않고, 슈가맨만의 술을 팔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김 대표는 아직 본인이 전통시장 창업의 성공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계속 자리 잡아가기 위해서 전통시장 전체를 활성 화할 수 있는 특별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상인들과 함께 플리마켓 형식의 장터를 자주 열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시장 도로를 막고, 시장 상인들이 나와 자기 음식을 팔고, 외부 셀러들도 초대해서 서로 교류하고 상생할 수있도록 말이에요. 시장 전체가 살아야 나도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박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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