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책 떠먹여 주는 여자, 북 크리에이터 책읽찌라 ‘이가희’ (한성대신문, 532호)

    • 입력 2018-03-26 00:00

 자기소개서를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으면서도 한 달에 책 한 권조차 읽지 않고 있나? 베스트셀러나 SNS에서 인기 있는 책을 구입하고 완독하지 못한 적은 없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정작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당신을 위해 누군가 대신 책을 읽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준다면 어떨까. 당신이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어도 책을 꼭꼭 씹어 떠먹여 주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북 콘텐츠 책읽찌라를 운영하는 북 크리에이터 이가희 씨가 그 주인공이다.

북 크리에이터? 북튜버?

 이가희 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북 크리에이터. (Book)과 유튜버(Youtuber)를 합쳐 북튜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 크리에이터와 북튜버는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들은 SNS나 동영상 플랫폼을 기반으로, 책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는 활동을 한다. 그녀는 책 내용을 요약해 전달하고 소개하는 책읽찌라라는 영상을 제작·게시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유튜브·페이스북·카카오채널 등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영상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는 5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북 콘텐츠 세계에 발을 딛다

 이 씨가 처음부터 북 크리에이터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모바일 앱서비스를 개발해 운영했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좋은 문장을 저장해 공유하는 원센텐스가 그것이다. 앱 홍보를 위해 팟캐스트, 카드뉴스 등 콘텐츠를 제작하던 중, 그녀는 페이스북에 라이브 방송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그녀는 불현듯 책 읽어 주는 방송을 해보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라이브 방송은 당초 계획에 없었던 일이라, 그녀의 첫 방송은 별다른 준비조차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고, 이를 계기로 이 씨는 북 크리에이터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원센텐스 앱 운영은 다른 회사에 양도한 상태다.

‘책읽찌라’라고?

 방송 제목을 책읽찌라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대학시절 별명 때문이다. 이 씨는 대학에서 중국문화를 전공했다. 그래서 중국어를 접할 기회도 많았다. 그녀의 이름인 이가희는 중국어 발음이 리 찌아시였고, 대학시절 동기들이 별명 삼아 그녀를 찌라시라고 부르던 것이 점차 찌라로 고착됐다.
 처음 페이스북에서 책 읽어주는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스스로를 책읽녀(책 읽어주는 여자)’ 같은 흔한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고민 끝에 자신의 별명을 직접 사용했다. 당시 안녕하세요, 찌라입니다라고 언급했던 멘트에서 책읽찌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콘텐츠를 위해

 북 크리에이터가 된 이후부터, 이 씨가 영상을 제작할 때마다 되새기는 모토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녀가 의도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녀의 영상을 보고 책을 직접 읽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상 한 편으로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좋은 질문이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서, 직장인과 학생들이 통근·통학길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얻어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책을 꼭꼭 씹어준다는 것

 ‘책읽찌라가 많은 구독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 씨는 사람들에게 내재돼 있는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꼽았다. 졸업 후 취직에 성공하면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과 같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도 공부하고, 주말에도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욕구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애초에 책 읽을 에너지가 바닥나고 만다. 이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은 누군가 대신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해주길 원한다. 그녀가 매 영상 인트로에서 책을 꼭꼭 씹어드린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그런 심리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영상이 구독자에게 닿기까지

 이렇게 꼭꼭씹은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가장 먼저 밟아야 할 단계는 구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을 직접 돈을 주고 사서 읽었을 때 아깝지 않을까?’, ‘친구에게 추천할 만한 책인가?’ 등 구독자 입장에서 질문을 만들고 이를 점검한다. 그 다음에는 대본을 작성한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한 영상에는 반드시 하나의 메시지만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용이 중구난방이 되어 전달력이 떨어진다. 대본을 작성한 후에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게시할 발문을 작성한다. 여기까지 하면 반은 끝난 것이다. 이제 도입부에 (Hook)’을 삽입한다. 훅은 페이스북 유저들이 피드를 내리는 단 몇 초 안에 그들이 이 영상을 볼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 시선을 끌고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후 그녀는 1시간가량의 영상 촬영과 편집을 거쳐 유튜브·페이스북·카카오채널 등에 영상을 게시한다.

독서에 부담을 느끼는 그대에게

 이 씨가 북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그녀에게 독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다수가 책을 사놓거나 빌려두고도 다 읽지 못한 채 포기한 경우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책을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며 뜻밖의 조언을 건넨다. 다만, 이들에게 책이 있는 환경에 익숙해질 것을 권유한다. 예를 들어, 약속 장소를 잡더라도 서점으로 하고, 공부를 하더라도 서가에서 하면서 항상 책과 가까운 곳에 있으라는 것이다.
 완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법도 있다. 이 씨는 프롤로그와 처음 1장만 읽어도 그 책의 50%를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읽은 후에는 더 읽고 싶으면 마저 읽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만 읽어도 좋다는 게 그녀의 조언이다.
 이 씨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책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라고 말한다. 다 읽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감을 갖지 말고, 그저 독서를 즐거움의 영역에 두면서 좀 더 편하게 여겼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강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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