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기쁨이와 슬픔이는 사고로 인해 ‘장기 기억 보관함’으로 떨어지게 되고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본부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히자 기쁨이는 방해가 되는 슬픔이를 두고 혼자 탈출하려다 실패한다. 그리고 기억들의 쓰레기장에 떨어져 잊혀 가는 기억들을 목격한다. 무채색으로 변한 채 뿌옇게 변해가는 기억들 속에서 기쁨이는 라일리를 기쁘게만 살게 하려고 했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실의에 빠진다. 자신이 생겨난 이후 난생 처음 슬픈 감정을 느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먼지처럼 흩어지는 잊힌 기억들 속에 홀로 빛나고 있는 슬픈 기억을 발견한다. 그리고 슬픔이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보통 기쁨을 긍정적, 슬픔을 부정적 감정으로 나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들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눈물은 삶의 문제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 않고 진정하도록 도와준다는 슬픔이의 말처럼, 슬픔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슬픔은 오히려 지친 마음에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슬픔이 결핍된 사람은 기쁨이가 슬픈 감정을 느껴보기 전처럼,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기쁨을 쫓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즉, 사람이 슬픔을 못 느끼게 될 경우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슬픔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전반에서 기쁨이는 리더로서 모든 감정들을 통제하려 노력한다. 슬픔이 외에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가 라일리의 감정을 정하려고 나서려 할 때도 기쁨이의 허락이 필요하다.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만 다른 감정들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감정들만을 느껴야만 한다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누적될 경우, 사람은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서 라일리가 아무 감정을 못 느낀다.
이처럼 삶에는 기쁨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쁨이가 다른 감정들을 이해한 후, 본부에서는 전과 달리 한 기억 속에 다양한 색의 감정이 조화를 이룬다. 만약에 세상의 모든 꽃이 장미같이 붉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봄이 지금만큼 아름답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정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유은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