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들불’처럼 타오르는 노동자의 외침을 위하여 (한성대신문, 534호)

    • 입력 2018-05-14 00:00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미국 노동운동가 스파이즈(August Spies)’의 법정 최후진술이다.
 1886,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 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때문에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결국,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51,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됐고 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앞서 언급한 스파이즈가 바로 그중 한 명이다.
 이후 1889,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는 세계 노동운동가들이 집결하는 장이 됐다. 51일이 세계 노동절로 지정된 것 역시 이 자리에서 이뤄진 것이다.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메이데이(May day)’는 이듬해인 1890년부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노동절보다 근로자의 날이라는 단어와 더 친숙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51일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여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나라도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당시,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노동절근로자의 날로 변경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동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지난 3, 이마트 구로점 계산대에서 근무하던 노동자가 작업 도중 쓰러져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같은 달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폐쇄된 한국GM 군산 공장 소속 노동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고용 보장과 노조 인정,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던 파인텍 노동자들은 200일 가까이 75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농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동 현실에 대항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1, 서울시청 광장에서 제128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가 개최됐다. 이는 매년 51일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집회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행사는 대회사를 시작으로 선언문 낭독, 연대 발언, 단체 행진 등으로 구성됐다.
 이날 민주노총은 선언문 낭독을 통해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노동3권 보장 노동헌법 쟁취 및 노동법 개정 법정노동시간 특례 업종 폐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법외노조 철회 노동적폐 청산 재벌체제 개혁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을 주요 의제로 발표했다.
 김명환(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올해 노동절을 맞아 무엇보다 기쁜 것은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터에서는 그 평화의 기운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130여 년 전 미국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노동이 차별받는 사회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헌법 쟁취와 노동법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노동을 새로 써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진 연대 발언에서는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최저임금법 제7조에 중증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명시돼 있다. 중증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해도 한 달에 30만 원 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대회에 참석한 각 노조의 조합원들도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자는 하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하라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이번 노동절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청년들의 움직임 역시 돋보였다.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목적으로 결성한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은 노동절 당일에도 근무하는 청년들의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메이데이를 알리는 행사를 실시했다.
 집회에 참여한 송아름(민중당 정치하는 편의점 알바모임, 28) 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열었다. 송 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주휴수당은 물론 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 문제나 감정노동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편의점 근로자의 열악한 노동여건을 성토했다.
 올해로 3년째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박은지(청년유니온, 29) 씨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노동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런 행사가 아닌가 싶다. 행복한 노동을 위해서 모두가 연대하고 논의하는 기회가 계속 마련됐으면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상자로 제작한 로봇모양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는 청년단체도 있었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의영(청년단체 너머 게으를 권리모임) 씨는 로봇이 온다, 기본소득이 온다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로봇으로 인력이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청년들이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위기감을 조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번 퍼포먼스는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알리기 위한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 집회는 오랜만인데 가슴이 벅차오르고 떨린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약속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 앗아간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노동이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강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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