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유독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 20세기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담장 수리(Mending Wall)”라는 시가 그 예이다. 봄이 되어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돌로 쌓은 담장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자 이웃과 함께 수리를 하는 어느 남성의 이야기이다. 화자는 “뭔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자연, 즉 사물의 이치(nature of things)는 인위적 담장과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은 이웃을 배려해서 수리를 하지만 딱히 담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시종일관 여유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이웃에게 강요하지 않는 배려심도 뛰어난 듯하던 화자지만, 자기처럼 비판적 재고 없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관행을 무조건 답습만 한다며 내심 이웃을 경멸하더니 급기야 구룰 구석기시대 무지한 야만인에 비유하면서 시는 끝이 난다.
담장은 우선 사유재산과 개인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구성된 근대 자유주의체제의 법과 규범, 한 사회의 문화와 전통 등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현대사의 질곡과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한반도를 가로지른 이데올로기의 대립 역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커다란 장벽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들이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담장 틈이 벌어져 보수가 필요하듯, 인간이 만든 제도와 문화 또한 변화하는 시대와 상황에 맞춰 수정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담장의 성격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수정 방식에 대한 합의가 쉽게 도출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프로스트는 자아와 타자를 나누는 인간 내면의 경계야말로 가장 견고하고 수정이 어려운 담장임을 나름 상당히 열린 사고를 하는 화자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는지.
차이와 다름을 문명과 야만, 우월과 열등으로 경계 짓는 심리는 아마도 인간 보편의 동물적 본능일 것이다. 동시에 본능을 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역시 바로 이 경계에 대한 자아인식일 것이다. 내면의 경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물의 이치 혹은 선을 추구할 때, 즉 경계를 넘어 지평(horizon)을 지향할 때 비로소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을 것이다.
황정현(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