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청년 문제, 함께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많은 직업군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 공기업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청년들이 태반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한성대신문사는 취업 대신 협동조합 창업을 선택해서, 대다수의 청년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오창민 사무국장을 만났다. 기존의 우리나라에 없었던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먼저 본인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상근조합원으로 활동하는 오창민이라고 합니다. 조합 내에서는 청년생태계팀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성북구로 이사 온지 4년째인 성북구 주민입니다.
Q. 활동하고 계신 협동조합 ‘성북신나’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A. 협동조합 성북신나는 2014년 2월에 만들어졌습니다. 문화를 통한 지역재생과 건강한 청년일자리 생태계를 미션으로 하는 협동조합입니다. 또 정릉동을 기록하는 종합웹진 ‘신나지’를 만들어서 웹 아카이빙을 하고 있고, 크라우드 맵핑 서비스인 썸맵(some map)을 개발해서 서비스 중입니다. 그 외에도 미션과 관련된 지역행사, 교육, 워크숍, 강연들을 하고 있습니다.
Q. 하시는 일들이 많은데, 협동조합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요?
A. 협동조합이 시민단체냐 봉사단체냐 그렇게 헷갈려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기본적으로는 회사이고, 기업의 한 형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동일하게 1인 1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Q. 청년들이 성북신나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2013년에 서울시 혁신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활동하던 청년들이 모여서 창립하게 되었어요. 2013년에 활동이 끝나갈 무렵, 모두 ‘앞으로 뭘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저희들 미래가 낙관적이지는 않더라구요. 그래서 비정규직 아니면 백수가 될 바에야, 활동하면서 쌓은 관계와 경험 안에서 창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어요?
A. 어차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인데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좀 우연히 하게 된 편인데, 우연히 혁신 활동가를 알게 되었고, 활동하다가 자연스럽게 성북신나를 하게 되었고, 성북신나를 하다보니까 어느새 한 3년차 된 것 같네요.
Q. 보통은 청년들과는 사뭇 다른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소셜섹터(social sector), 제3영역을 포함한 이런 활동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A. 제 개인적으로는 소셜섹터나 제3영역의 활동들이 기존 주류경제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진로들 중에 하나 정도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한 4년 정도 하다 보니 ‘내가 이 일을 계속하면서도 굶어죽지는 않겠구나.’하는 확신은 들었어요.
앞으로는 이 영역의 일을 하면서도 남들 하는 것처럼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의 설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가보고 싶어요. 당장의 그런 금전적 보상이 적다고 한다면, 다른 보상들 예를 들어, 개인적인 활동들을 조금 더 많이 보장 받을 수 있게 한다거나 아니면, 휴가나 복리후생이 잘 되어있도록 하는거죠. 물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장기적인 방법도 모색하고 있어요.
Q. 그렇다면 성북신나에서는 조합원들에게 금전적 보상 외에 어떤 보상을 주고 계신가요?
A. 애초에 저희는 경영인들이 모였다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월급을 책임지는 직업구조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것이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단순히 활동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월급체계가 없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처음에 무조건 최소한 120만원은 가져가자고 약속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서울시 생활임금이 120만원이었거든요.
저희는 월급체계를 만드는 것 외 영역에서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해봤어요. 팀에 개인을 맞추기 보다는, 개인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노력을 했죠. 출퇴근만 해도 자율출퇴근 제도나 재택근무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개인의 강점을 살리면서,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최적화를 해왔습니다.
휴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는 휴가’라고 해서 그냥 뭐 갑자기 출근하기 싫은 날은 동료들의 동의 구해서 갈 수 있는 유동적인 휴가제도를 만들었어요.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쯤 날씨가 좋거나 축제 있는 날은 하루 쉬고 같이 놀러가기도 해요. 일을 하면서 신나는 것도 있지만, 과정에 만나는 작지만 신나는 일들을 장치들을 만들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성북‘신나’라는 이름에 대한 강박관념도 좀 있어요.(웃음)
Q. 급여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A. 저희가 시작 당시에 9명이었으니까 한 달에 거의 천만원 정도를 벌어야 하는데, 첫해에는 사실 힘들었죠. 비즈니스 모델이나 뚜렷한 사업아이템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어떻게든 했죠. 결국에는 연말에 좀 적자가 났긴 했지만요.
2년차부터는 돈은 벌리는데, 이제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돈을 벌기위해서 한사람이 맡아야 하는 프로젝트가 3,4개에서 많으면 5개가 되어야 하는 구조라서 업무가 너무 과중되었죠. 그래서 돈은 벌었는데 이렇게 살다가 우리가 죽겠다 이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3년차인 요즘에는 협동조합 내 조합원들의 권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매년마다 계속 고민거리들이 생겼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고민들을 잘 극복해 볼 수 있을까’를 당면과제로 삼아 발전해 온 것 같아요.
Q. 그 과정 속에서 많이 조합원들 간에 갈등은 없었나요?
A. 저희는 많이 싸워요. 그게 성북신나의 장점이자 건강함이라고 생각해요.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협동이 키워드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갈등이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구성원들이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잘 싸우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저희는 건강하게 잘 싸우고 있어요. 각자 자라온 환경, 활동분야 등 많은 것들이 다른데, 그냥 이견 없이 의견이 수렴된다는 건, 누군가는 생각이 없거나 영혼 없이 동의를 하는 게 아닐까요? 저희는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잘 싸우는 편인 것 같아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최선의 선택이 어떤 것인가 찾아보는 것 같아요. 격렬한 회의 끝에는 맥주를 마시러 가죠.(웃음)
Q.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많은 사회문제들이 한 개인에게 수렴되었을 때는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취업문제, 연애문제, 금전문제, 부모님이나 친구들과의 소통문제... 이 많은 문제들을 개인이 다 해결하기가 힘드니까 같이 풀어나가고 같이 고민해 나갈 수 있는 청년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저희의 취지입니다.
성북신나가 대단한 멘토는 아니지만, 2~4년 조금 먼저 가본 선배들이 바로 뒤에 따라오는 대학생들이나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구조들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일반 대학생들에게 안철수는 너무 멀잖아요. 내가 저 사람처럼 당장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냥 2~4년 정도 먼저 가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내가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 수 있거든요. 그렇게 후배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경험들을 전수해주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대학생 분들은 성북신나로 연락주세요.
김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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