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명분은 '마법'이 아니다 (한성대신문, 534호)

    • 입력 2018-06-04 13:30

최근 국세청이 대학축제 기간 동안 주류 판매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각 대학에 송부했다. 대학축제 기간에 관습적으로 성행했던 학과 주점을 주세법에 따라 엄격하게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무허가업체가 노상에서 술을 파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므로, 국세청은 그동안 행해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일 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창 축제철을 맞아 들썩이고 있던 대학가는 이 같은 소식에 연일 비상경보를 울리는 상황이다.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의 인근 대학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으며, 축제 때 주점 운영을 포기하는 대학 역시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우리학교는 추후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지리한 회의가 가져올 결과는 이미 불 보듯 뻔하다. 대학구성원을 보호해야하는 학생회가 법대로 하겠다는 국세청의 으름장에도 주점 설치를 강행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국세청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축제와 술이 아주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실은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명백하지만, 반대로 법을 어기면서까지 축제에서 술을 마실 이유가 없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점 운영의 금지가 음주 불가능으로 이어지지는 것도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주변 편의점에서 술을 사들고 와서 마시기만 해도 법에 저촉될 일 없이 축제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술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국세청의 통보가 축제철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늘 그렇듯이 학과 주점은 맨땅에서 마법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학과 행사에 참여할 인원을 선발하고, 학과마다 특색 있는 주점 운영을 위해 회의를 진행한다. 뿐인가? 어떤 사람이 요리를 하고, 어떤 사람이 서빙을 하고, 메뉴의 원가와 가격은 얼마로 하고······. 하루 이틀 만에 주점이 완성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세청이 보낸 공문은 이러한 노력을 마치 마법처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1~2개월만 더 빨리 처리했어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넌지시 일러두면 될 일을 지엄한 법의 칼날을 뽑아들고 학생들을 겁박하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과정은 어찌보면 결과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록 그 명분이 정당할지라도, 그것이 불합리한 과정을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는다. 국세청의 주장이 확연한 명분을 갖추고 있는데도 여러 대학에서 볼멘소리를 내는 연유도 이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은 악습이 된다. 이는 물론 분명히 철폐되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명분은 마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명분만을 앞세우기보다, 구성원을 존중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만 마침내 민주사회에 걸맞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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