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책과 사귀기 (한성대신문, 535호)

    • 입력 2018-06-04 13:32

<사고와 표현>을 담당하고 있어서인지 학생들이 좋은 책 고르는 법을 묻곤 한다. 책을 고르는 법을 고민하다가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친구를 사귀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모두 친구가 되지 못하듯 책 또한 그렇다.

나 역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몇 권의 책들이 나의 책이 되었을 뿐이다. 그 책들은 재미와 의미가 각각 달랐다. 심심할 때 놀고 싶은 친구가 있고, 많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해소되지 않았던 헛헛함에 한잔 하고 싶은 친구가 있고, 비밀을 나누고 고민을 함께 하는 친구가 있듯이 나에게 책은 장난감이고, 술친구이고 내밀한 삶을 공유한 친구였다.

어린 시절 내 고향 시골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위아래 서너 살까지는 성별을 불문하고 친구를 먹었다. 책 또한 그랬다. 읽을 게 많지 않아서 동일한 책을 심심할 때도 읽었고, 엄마에게 야단맞은 후 속상할 때도 읽었다. 그리고 오빠의 책을 몰래 읽기도 했다. 고등학생 오빠의 숨겨둔 여인 차타레 부인을 초등학생 때 몰래 만나곤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알아갔다. 나에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를. 3, ‘의 위력 앞에 무력해진 꿈을 마음 속 깊이 감춘 채 황량하고 들판을 걸을 때 묵묵히 걸어 준 히드클리프, 대상 없는 설렘에 대답해준 수많은 연애소설의 주인공들, 내 안의 다양한 목소리에 당황스러워하던 나에게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위로해 준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두려움을 감추고 방어적이던 나를 질책했던 스트릭랜드, 그들은 이제 내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듯 좋은 책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가 삶의 든든한 지원자이듯 책은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긴긴 체험을 통해 내린 대답은 이렇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봐야 하듯 책을 자주 접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에게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고.

나은미(사고와표현교육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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