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찜기가 된 대기, 찜이 되는 지구 (한성대신문, 536호)

    • 입력 2018-09-03 00:00

 지난 8월 1일, 서울의 기온은 섭씨 39.6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날 홍천은 41도를 넘는 살인적인 폭염에 몸살을 앓았다. 말복이 지나도 폭염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고, 111년만에 8월 중순 최고 기온을 경신하며 무더위는 더더욱 기승을 부렸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고통받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애리조나주(州)는 기온이 45도 가까이 올라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극지방과 가까운 스칸디나비아반도 역시 이상고온 현상을 피해갈 수 없었다. 15~20도를 맴돌던 여름 기온이 올해는 30도까지 상승한 것이다.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열돔
 고온 현상은 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전세계적 폭염의 원인으로 ‘열돔현상’을 꼽았다. 열돔현상은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거나 아주 서서히 움직이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 둬 지표면의 온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구온난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오재호(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알프스산맥이나 로키산맥 등지의 적설량이 열돔현상의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적설량이 많으면 햇빛을 반사해 지면의 가열을 막아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면이 햇빛에 가열돼 공기의 가열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산맥의 영향을 받는 지역은 적설량이 적으면 고기압이 비교적 쉽게 형성된다. 이때 고기압이 하강하면서 열돔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무더위도 이와 관련이 있다. 기상청은 폭염의 원인 중 하나로 티베트 고기압의 발달을 꼽았다. 티베트 고원은 여름이 되면 강렬한 햇빛으로 달아올라, 같은 고도의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매우 높아진다. 이때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하면서 대기권 상층에 고기압이 뚜렷해지는데, 이를 티베트 고기압이라 부른다. 올해는 티베트 고원의 적설량이 적어 티베트 고기압이 더 빨리 형성됐고, 이것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하강하면서 열돔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 싸움에 등 터진 한반도
 폭염의 또 다른 원인으로 기상청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 확장으로 인한 장마 단축을 언급했다. 이는 장마전선의 형성 원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장마전선은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만나면서 형성된다. 오호츠크해 기단은 오호츠크해의 수온이 주위보다 낮을 때 만들어지는데, 초여름에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동서로 길게 확장된다. 이때 오호츠크해 기단이 북태평양 고기압과 만나면 두 기단의 경계선에는 장마전선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형성된 장마전선은 두 기단의 세력 싸움에 따라 이동하는데, 장마전선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가 크게 달라진다. 오호츠크해 기단 세력이 북태평양 고기압보다 더 강하면 장마전선이 남하하고, 우리나라는 한랭 다습한 오호츠크해 기단의 영향을 받아 이슬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진다. 반면,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오호츠크해 기단보다 강해져 장마전선이 북상하면 한반도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게돼 열대야와 무더위가 시작된다.

▲여름철 동서로 확장된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만나면 두 기단의 습한 성질로 인해 경계선에 구름이 만들어지고 집중호우가 내린다. 이렇게 형성된 장마전선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되면 북상한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순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생대는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는 빙하기와 빙하가 녹는 간빙기를 반복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 때문에 화석연료에 이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 또는 집단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빙하기와 간빙기의 순환’을 언급하기도 한다. 현재 지구가 간빙기에 진입하는 단계라 고온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순환은 수백만, 수천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아주 긴 시간의 변화다. 비교적 단기간에 나타난 이상기온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며 “이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증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이상기온 현상이 산업혁명 이후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구를 망치는 인간의 욕심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1997년에 교토의정서를 체결하고, 2015년에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맺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두 협약 모두 여러 선진국들이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탈퇴해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까지 낮추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에서의 약속은 실현 가능성이 5% 미만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연 평균 1인당 26톤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30년 뒤인 2050년까지 2톤으로 감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2위인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면서 평균기온이 예상보다 더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21세기 내에 지구 생물종의 30%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30%에 인류가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인간의 이기가 이상기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지금,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눈앞의 이익과 미래를 맞바꾸는 어리석은 실수를 할 것인가.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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