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전등이 깜빡이는 절연구간, 알고 보니 갈등의 산물? (한성대신문, 537호)

    • 입력 2018-10-01 00:00

“잠시 후, 전력 공급 방식 변경으로 객실 안 전등이 소등되며, 냉·난방 장치가 잠시 정지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4호선 전동차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객실 안내 방송이다. 방송 직후에는 객실 내 전등과 냉·난방 장치가 꺼졌다가 10~20초 후 다시 켜지는데, 이 상황을 처음 겪는 탑승객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이런 현상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지하철 전동차에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 설치돼 있다. 그중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4호선은 광역철도와 연결돼 있어 지상과 지하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런데 지상 노선에서는 교류 전선을, 지하 노선에서는 직류 전선을 사용하고 있어, 지상과 지하를 오갈 때 ‘전력 공급 방식 변경’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직류와 교류의 전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류 전선에서는 전기가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반면, 교류 전선에서는 전기가 시간에 따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크기와 방향을 바꾸며 흐른다. 때문에 두 전선을 연결하려면 전선 사이에 변환기를 설치하거나, 중간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구간인 ‘절연구간’을 설정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중 절연구간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절연구간을 지날 때는 전동차 전원이 꺼지는데, 이에 대해 박재우(서울교통공사 전기처) 과장은 “이 구간에서는 관성을 이용해 전동차를 운행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가 도로에서 주행하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이전에 달리던 관성으로 일정 거리를 나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박 과장은 교류 방식과 직류 방식을 병행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서울지하철을 건설하던 1970년대, 지하철 건설 방식을 두고 두 기관이 팽팽히 대립했다”고 말했다. 철도청(코레일의 전신)은 교류 방식을 주장하고, 체신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는 직류 방식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철도청은 교류 방식을 채택해 중앙선, 태백선, 영동선 등의 철도선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교류로 연결하면 직류를 사용할 때보다 더 멀리까지 전기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철도청은 철도선과 연계 운행할 서울지하철도 교류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체신부는 직류 방식을 고집했다. 당시 서울지하철은 공사 편의를 위해 간선도로를 따라 노선을 구획했는데, 간선도로 하부에는 통화선이 설치돼 있었다. 이 상황에서 지하철을 교류 방식으로 운행하면 전류 영향으로 통화 시 잡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체신부의 주장이었다.

또한, 이들은 터널 건설 비용도 근거로 내세웠다. 지하철을 건설할 때는 안전을 위해 지면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 직류 방식을 선택하면 교류 방식을 사용할 때보다 터널을 20~30cm가량 얕게 파도 되므로 건설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철도청과 체신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체신부, 산업부 등 관계 부서에 이 문제를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관련 부서는 여러 차례 협의 끝에 1971년, 지상철은 교류 방식으로, 지하철은 직류 방식으로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때문에 전력 공급 방식을 변경할 필요가 생겼고, 절연구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절연구간은 두 부처 간의 갈등에서 탄생한 산물이다.

윤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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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에 위치한 절연구간. 이 구간에서는 전동차 전원이 차단되므로 객실 내 전등과 냉·난방 장치가 꺼진다. 이때 전동차는 관성을 이용해 나아간다. 사진 제공: 서울교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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