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는 교수, 교직원, 학생, 동문 등등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학교라는 큰 유기체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에서 최근 일어난 사건들은 과연 이들 사이에 신뢰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학교는 현재 학사구조개편이라는 진통을 겪고 있다. 사실 우리학교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을 때부터 이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있었다. 우리학교는 재정자립도가 낮아 교육부와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에 의지하고 있으며,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다음 평가를 대비해야만 한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학교에게 변화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최근 간담회에서 있었던 이상한 총장의 발언에 따르면, 우리학교는 교육부의 평가 이후에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다른 학교보다 더 먼저 변화해서 우위를 점해야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런 대학본부의 판단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이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내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신뢰를 잃는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이런 학교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학사구조개편안이 등장했다. 공개된 개편안에는 모든 학과가 없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 커리큘럼도 대폭 수정되어 있었다.
만약 어떤 음식점에서 제육덮밥을 시켰는데, 갑자기 비빔밥이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주인은 구제역 때문에 돼지고기를 쓸 수 없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이것을 상에 올렸다. 손님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말없이 그냥 나온 음식을 먹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당연히 왜 이렇게 나왔냐며 묻거나 항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렇게 음식점에서 음식을 하나 시켜도 이런 반응이 나올 텐데, 300만원이 넘어가는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은 오죽할까? 개편안을 본 학생들 역시 반발하기 시작했고, 학교의 여러 곳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만약 위의 이야기에서 주인이 ‘지금 구제역 때문에 돼지고기를 쓸 수 없어서, 비빔밥으로 준비해도 될까요’하고 먼저 말이라도 해줬다면, 손님이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학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학교가 변화를 선택한 것을 책망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의사결정의 과정에는 교직원집단과 교수집단 중 일부만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들 중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학교가 이런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린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없이 진행된 개편안을 학생들이 믿을 수 있을까? 대학본부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이번 개편안을 진행했다고 해도, 이런 방식의 일처리에 대해 학생들은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자신들이 머물던 학과가 없어지고, 커리큘럼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다른 이가 마음대로 선택해줬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인문과학대학에서는 학칙을 바꿔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사회과학대학에서는 자신들과 협의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했다.
지금처럼 학교가 학생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상황이 진행된다면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특히 군휴학을 하는 학생들이나,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은, 이미 이런 상황에서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필자 역시 군생활을 하면서, 필자가 속한 한국어문학부와 지식정보학부가 합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
과연 우리학교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박종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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