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경제와 경매는 한 글자 차이, 스페셜리스트 정태희 (한성대신문, 538호)

    • 입력 2018-10-22 00:00
▲정태희 씨는 서울옥션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 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옥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진로와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했다면 더욱 그렇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전공과 진로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면 여기에 주목하자. 필자가 ‘정답’을 제시해
줄 수는 없지만,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는 제안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경매회사 ‘서울옥션’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정태희(경제 05) 동문을 통해서 말이다.
 ‘스페셜리스트’라 하면 언뜻 떠올리기에 ‘특별한 사람’일 것만 같다. 명칭조차 생소한 이 직업은 쉽게 말해 ‘미술품 경매 전문가'를 의미한다.
 정 씨는 미술품 경매를 “작품을 처음 구입한 1차 구매자가 경매를 통해 낙찰 받은 2차 구매자에게 작품을 되파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의 주요 업무는 미술품 경매를 전반적으로 기획하는 것 이다. 우선 그는 기획 의도에 적합한 경매 작품을 선별하고 해당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수소문한다. 그 다음, 그들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도록 설득한다. 물론, 작품 소장자가 정 씨를 찾아와 자신이 소장 중인 작품에 대해 의논·상담할 때도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정 씨가 미술품 판매권을 획득해내면, 판매할 작품의 도록(내용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엮은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도록에는 각 미술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 등을 실어야 하므로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막연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학과를 선택한 것도 뚜렷한 비전이나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는 아니었고요.”
 으레 남들처럼 상경계열에 진학한 정 씨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경제학이 과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인지, 어떤 길로 나아가야 좋을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군 복무 중에도 계속 됐다. 그러던 중 정 씨는 휴가 기간에 찾은 미술관에서 뜻밖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때 감상한 미술품과 작품 하나하나에 녹아 있는 스토리가 저를 매료시켰어요. 작가들의 신선하고 다채로운 시각에 영감을 얻었고요. 세상을 보는 제3의 시각을 갖게된 셈이죠.”
 군 전역과 동시에 복학한 정 씨는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했다. 먼저, 미술 관련 교양 강의를 골라 들었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회화과 전공 교과목인 ‘미술사’, ‘미술 이론’까지 수강했
다. 그의 미술 사랑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졌다.
 “시간을 쪼개서 미술관을 찾아 다녔어요. 나중에는 미술관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해설사로 일하기도 했어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술 분야를 기웃거리던 그는 결국 진로를 미술 쪽으로 굳혔다. 전공과 관련이 없는 분야라 진로를 설계하려면 더욱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경제학과 지도교수님 대신 회화과 정헌이 교수님께 면담을 부탁드렸어요. 애초에 달콤한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받은 충고와 조언은 꿈과 희망보다 냉혹한 현실에 더 가까웠어요. 미술계는 직종 스펙트럼이 넓지 않을 뿐더러 금전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던가. 눈앞의 냉혹한 현실에도 그는 미술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졸업 논문에서 ‘경제학에서 본 미술시장’에 관해 다뤘고, 학부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그렇다면 정 씨는 왜 ‘학예연구사’나 ‘큐레이터’가 아닌 ‘스페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일까. 그 해답은 정 씨가 한때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겼던 ‘경제학’에 있었다.
 “현재 미술품 경매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술 전공자예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오랜 학업 기간을 따라잡을 순 없죠.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저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생각해보니 경제학이 바로 그 ‘무언가’더라고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은 많지만, 경제학과 미술을 모두 전공한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때마침 서울옥션의 스페셜리스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결과는 나쁘지 않았죠.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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