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파랗게 멍든 청춘, 삶의 끝에서 봄을 맞다, 청년 영정사진 작가 홍산 (한성대신문, 539호)

    • 입력 2018-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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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6 16:03

청년 영정사진 작가 홍산의 영정사진 [사진 제공 : 홍산]

인생의 끝은 언제일까?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오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는데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늘 어렵다. 두렵고, 슬프고, 우울하고… 언젠가 닥칠 죽음의 순간을 막연히 떠올려보면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나’ 싶은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활기와 진취의 상징인 청춘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요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활기찬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 청년들이 영정사진이라니…. 혹시 불치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떠오를테지만, 섣부른 걱정은 금물이다. 이들은 영정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치열한 현실에 지친 마음을 가상의 죽음을 마주하며 정리하고, 삶의 소중함을 되새긴다는 것이다.


이 ‘죽음 마주하기’ 열풍은 한 대학생 사진작가의 ‘영정사진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사진 작가 홍산(24) 씨는 올해 4월부터 ‘생의 굴레를 내던져 자신을 마주하는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 다.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20대 청년이라는 것 이다. 젊음의 상징인 대학생이 어떤 연유로 영정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그녀를 찾았다.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씨는 “죽음은 우리의 삶과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숨통이 끊어지는 물리적 죽음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도 은유적으로는 죽음과 같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정해 놓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무기력증과 우울증도 또 다른 죽음의 형태가 아닐까요.”


그녀는 주변에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노력과 열정, 그리고 세상을 바꿀 용기까지…. 홍 씨는 청년에게 만능을 기대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무기력증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녀 역시 그런 시간을 겪었다. 당시 그녀는 우울한 마음에 같은 처지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아, 이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도태되는 걸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있던 그녀는 이런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썩어 들어갈 것만 같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런 그녀에게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 바로 사진이었다.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DSLR을 가지고 사진을 독학한 홍 씨는 문득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표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영정사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영정사진일까? 세상에는 인간 외에도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고, 모두가 죽음을 맞는데 말이다.
“다양한 오브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사람’이야말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스튜디오 촬영 특성상 공간의 제약이 있어 얼굴밖에 찍지 못하지만, 표정 하나로도 충분히 각자의 개성에 맞는 죽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봐요.”


그녀는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똑같이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이지만 어떤 이는 우울함이 가득한 모습으로, 또 어떤 이는 행복이 가득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이다.
홍 씨는 손님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 오든, 영정사진을 촬영한 모두가 이 활동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에서 무겁게 여겨지는 주제를 다루지만,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선 손님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길 원한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하고, 손님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사진에 담아드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근엄한 죽음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죽음과 마주하기를, 그로 인해 내일을 살아갈 활력을 얻어가기를 바라요.”


그녀는 현재 직장에 다니며 사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스튜디오 운영을 본업으로 삼지 않고 직장생활과 병행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녀는 웃으면서 답했다. “사진을 ‘일’로 하니까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을 제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제가 사진을 통해 힘든 시기를 이겨냈듯이, 제 작업을 통해 많은 분들께 힘을 드리려고요.”

▲홍 씨가 촬영한 작품. 그녀는 일반적인 영정사진처럼 정면을 응시하고 무표정한 것 대신, 개개인의 생애와 개성이 스며든 영정사진을 찍고자 했다. [사진 제공 : 홍산]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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