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땅의 싱그러움을 당신의 식탁까지…'채소 소믈리에' 정소이 (한성대신문, 540호)

    • 입력 2018-12-10 00:00

 매 끼니 빠지지 않고 식탁 위에 자리하 는 온갖 채소들. 주로 요리에 향이나 식감 을 더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재료와 결합 해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쓰 인다. 인스턴트 식품에서도 채소는 빠지 는 일이 없다. 하다못해 튀김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재료로 채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밀을 주원료로 한 튀김가루 는 사용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우리 식탁에서 빠지는 일이 없 는 식재료가 채소건만, 이 채소가 어떻게 재배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는 지 알기는 어렵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이 높아진 요즘, 이러한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쉽고 편안하게 좋은 채소를 고를 수 있을 터. 더불어 그 채소를 활용한 요리법까지 알려준다면 금상 화가 아닐까. 이같은 활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채소 소믈리에’ 정소이(23) 씨를 만나봤다.

‘와인’ 말고 ‘채소’ 소믈리에
 와인 소믈리에라는 말을 들어봤어도 채소 소믈리에는 선뜻 와닿는 직업이 아니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채소 소믈리에’라 고 대답하면 다들 물어보시더라고요. ‘채소 감별사냐’, ‘채식하는 사람이냐’ 하고요. 쉽게 말해서 채소 소믈리에는 채소가 흙에서부터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마트나 시장에서 채소를 구입할 때, 포장재에 원산지나 성분 외 다른 정보는 마땅히 표기돼 있지 않다. 간혹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채소의 포장재에 생산자까지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채소가 어떤 땅에서 어떤 비료를 흡수해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지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채소 소믈리에는 이러한 정보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저 혼자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 죠. 채소를 재배하는 과정을 산지에 가서 살펴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채소 소믈리에 협회에 등록된 사람과 함께 산지 교류를 다녀요. 채소가 어떤 토양에서 자라고 있는지, 농약은 어떤 제품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확인하죠. 이것만이 아니에요. 그 채소가 납품되는 공판장, 도·소매시장도 직접 확인해요. 그렇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도, 공부해야 하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죠. 사실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떡잎부터 남달랐던 그녀의 어린 시절
 일본에서는 4만 명이 넘는 채소 소믈리에가 활동하고 있는 데에 비해, 현재 추산 되는 국내 채소 소믈리에 종사자 규모는 800여 명에 불과하다. 정 씨가 이렇게 생소한 직업을 선택한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렸을 때부터 안 가본 산이 없어요. 그렇게 온갖 산을 다니다 보니 야생화, 산나물 등 채소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하나 둘 공부하면 서 재미가 붙었어요. 게다가 외할머니께 서 농사를 지으셔서 작물을 기르는 법도 어깨 너머로 배웠고요.”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푸드 스타일 리스트(요리 연구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고,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터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방학마다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 것이다. 한·중·일·양 식, 복어 등의 요리 자격증은 물론이고 플로리스트 자격증까지…. 현재 그녀가 지니고 있는 자격증만 13개에 달한다.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께서 ‘4도3농’ 생활을 하셨어요. 4일은 본가가 위치한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시고, 3일은 대구와 인접한 경북 고령군에서 농사를 지으셨다는 의미예요. 이런 가정환경은 푸드 스타일 리스트를 꿈꾸던 제게 안성맞춤이었어요.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주고 계세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그녀는 꿈을 향한 뜀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푸드 코디네이터를 전공 하며 더욱 심층적으로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학교 전공 실습 시간에 故 김은경 요리 연구가를 만나게 됐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자연을 뛰어다니며 자랐는데, 갑자기 도심에서 생활하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 더라고요. 마땅한 연고도 없었고, 무엇보다 동네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정이 넘쳐나는 느낌을 서울에서는 받지 못 했어요. 그 와중에 김은경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선생님께서 채소 소믈리에를 직업으로 추천해주셨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녀는 현재 채소 소믈리에 협회에서 채소 관련 강의도 맡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고.
 “지금은 괜찮은데 강의를 처음 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전문성을 확보 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죠. 예를 들어서 어떤 채소는 데칠 때 소금이나 식초 중 어느 것을 활용해도 상관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한된 강의 시간 때문에 둘 중 한 가지만 알려드렸더니 의아해하시는 어르 이 계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수강생 중에는 저보다 경험이 많은 어르신들이 종종 계시다 보니 강의를 진행하면서 곤란할 때도 있었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그녀의 일이 항상 어렵고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어렸을 때부터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채소에 대한 그들의 인식 자체를 바꿔주 고 싶더라고요.”
 정 씨는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채소에 거부감을 갖는지, 어떤 요리법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의 식습관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맞춤 요리를 해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식습관 개선에 도움을 줄 때마다 그녀는 보람을 느낀다.

 이외에도 정 씨는 SNS에서 채소 정보와 요리법을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채소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채소를 의인화한 그림도 직접 그려 SNS에 게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1인 미디어를 활용해 채소에 관한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나누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개인이 채소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기는 힘들어요. 인터넷에는 정확한 정보도 잘 없고요. 그래서 누구나 안심하고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농장부터 식탁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완벽한 채소 콘텐츠를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게 제 꿈이에요.”

▲정소이 씨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채소 그림. 정 씨는 채소를 활용한 각종 요리 사진도 SNS에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365일 제철채소달력’에는 채소에 대한 온갖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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