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역사를 담은 푸른 빛, 청년들을 밝히다 EBS 허성호·이승주 PD (한성대신문, 545호)

    • 입력 2019-05-13 00:00

만물이 푸른 봄철, ‘청춘’. 눈부신 청춘의 중심에는 단연 청년이 있었다. 물론, 언제나 ‘청년’은 진취를 대변하기 마련이지만 100년 전, 우리의 청년들은 만물이 푸른 봄철 그 어디 즈음에 머물렀을까.

여기, 이같은 물음과 함께 청년 독립운동가를 추적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EBS의 허성호(37)‧이승주(27) PD다. 그들을 만난 것은 어느 푸르른 봄날, 해가 진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광주에서 촬영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상경한 그들의 모습은 매우 피로해 보였지만, 웃음과 활기는 그들의 곁에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 허성호 PD

‘역사’, ‘여행’, 그리고 ‘청년’ 덕후

EBS에 입사한 지 올해로 10년이 된 허성호 PD는 그야말로 역사‧여행 덕후다. 실제로 그는 방송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역사‧여행 분야 위주로 구상한다. 업무를 하면서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의 프로그램을 하면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는 프로그램을 맡을 때마다 시청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역 사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역사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음을,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의외의 사건이 있었던 의외의 장소에서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내 따돌림과 같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학창시절 반장을 할 때면 친구들 간 소외감을 없애는 것에 주력했어요. 소외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해는 반장 일을 못했구나, 자책하기도 했죠.”

대학 진학 후에도 그의 관심은 한결같았다. 그의 PD로서 첫 작품이 E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다큐프라임 <학교 폭력>이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는 ‘청소년’과 같은 맥락으로 ‘청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청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현재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역사의 빛, 청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 이승주 PD

작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인간 비타민’

이승주 PD는 본인의 의지와, 선배 허성호 PD의 강력 추천에 힘입어 이번 <역사의 빛, 청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함께하게 됐다. 그녀는 아직 입사 4년 차인 ‘새내기’ PD다. 하지만 그녀의 신념만큼은 뚜렷하다.

“저는 TV를 보면서 위안을 받은 적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는 PD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PD로서의 목표예요.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느 누군가의 ‘인생 프로그램’이 제가 만든 작품이라 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따라서 그녀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하는, 영상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허 PD가 이 PD를 이번 다큐프라임에 추 천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에게 ‘험난한 강행군을 웃으며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힘과 청량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비타민’. 그녀를 대변해줄 가장 적합한 단어였다.

같은 듯 다른 두 명의 ‘시너지’

허성호 PD와 이승주 PD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들 모두 ‘대학 전공이 PD라는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허 PD는 행정학과 신학을, 이 PD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한편, 허 PD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소위 ‘역덕(역사 덕후)’이었던 반면, 이 PD는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차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역덕과 역알못이 어떻게 뭉치게 됐을까?

“역사 프로그램을 만들 때 역사를 많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많이 알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역사적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적임자가 바로 이승주 PD였고요.”

허 PD는 자신이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면, 이 PD가 그것을 ‘오늘날 생각해볼 문제’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시너지는 전공‧관심사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음에도 최고의 호흡을 연출하게 했다.

역사의 진정한 빛은 ‘청년’

“독립운동의 중요한 순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곳에는 늘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다소 소극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었을 때 먼저 독립선언서를 읽은 것도 20세를 전후한 청년이었고, 3‧1운동 이후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국으로 불을 붙였어요.”

허 PD는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거의 모든 독립운동에서 묵묵히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이번 다큐프라임은 무엇이 당시의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는지, 우리는 지금의 청년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제작 중”이라고 전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많고 많은 세대 중 왜 청년이었을까? 왜 청년은 독립운동사의 모든 지점에 머물렀을까?

이같은 질문에 이 PD는 “청년은 청년만 이 가지고 있는, 남들이 보기에 무모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열정’으로 터트리는 지점이 있어요. 청년에게는 패배의식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가진 약간의 무모함이 독립운동이라는, 일제강점기라는 강력한 벽 앞에서 폭발한 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시청자에게 ‘청년을 귀하게’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젊은 사람이 항상 사회를 선도하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청년을 귀하게 여기고 청년에게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청년을 귀하게 여겨야 청년들도 기성세대를 신뢰하고 따르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죠.”

‘청년’이 ‘청년’에게 전하는 말

마지막으로 청년에게 전하는 말을 부탁했다. 허 PD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그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길을 찾아 그 길로 열심히 가면 분명 원하는 삶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인생이라는 먼 길, 가는 길 어렵지 않게 축지법을 쓰자면 그것은 바로 좋은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에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목표에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이 PD는 본인의 개인적 아쉬움을 털어놨다.

“저는 꿈이 ‘직업’이었던 게 아쉬워요. PD가 꿈이었는데, 막상 PD가 되고 나니 다시 인생의 고민이 시작되더라고요. 꿈을 이루면 인생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 꿈은 ‘PD’가 아니고 ‘PD가 돼서 시청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청년들이 동사형의 꿈을 갖길 바라요. 그러면 취업 실패도, 시험에 낙방하는 것도 인생에서 잠시 들르는 정류장일 뿐이에요. 그건 바로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동사형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다 생을 마감할 때 마침내 그것을 이뤘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 생각해요.”

작가 이노톨 프랭스는 ‘내가 만약 신이라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청춘이란,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라는 의미다. 당신은 당신의 청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당신의 청춘을, 청년기를 ‘귀하게’ 여기며 잘 살아가고 있는가.

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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