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수도관도 늙는다? 노후관이 불러온 ‘붉은 수돗물’ 사태 (한성대신문, 547호)

    • 입력 2019-09-02 00:00

지난 5월, 인천 서구 부근에서 불순물이 섞이거나 붉은 색을 띄는 수돗물이 공급돼 논란이 일었다. 이어 서울시 문래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해 다시 한 번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수돗물 ‘아리수’가 식용수로 홍보되고 있어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인천에서 혼탁수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물때와 물의 성분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돗물은 가정으로 공급되기 전 세균 제거를 위해 염소(Cl)로 소독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물속에 있던 망간(Mn)과 철분이 염소와 만나면서 수도관 벽에 들러붙어 물때가 형성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관에 흘러들어 온 물의 양과 속도가 증가하면서 물때가 수돗물에 섞여들어간 것이다.

수돗물이 붉게 나타난 것 역시 물의 성분과 관련이 있었다. 박재우(한양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물이 대기 중 에 오래 노출되면, 대기에 있던 이산화탄소(CO₂)가 물에 녹아 탄산(H₂CO₃)이 생성된다. 이때 탄산이 산소(O)와 결합하면 산화철(FeO)과 철수산화물(FeOOH)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물이 붉게 변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서울시에서 발생한 혼탁수 문제는 수도관 재질에 원인이 있었다. 수도관은 물 공급 과정에 따라 ▲도수관 ▲ 송수관 ▲배수관 ▲급수관 ▲옥내급수관 순으로 나뉘는데, 이중 배수관과 급수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기존에 서울시에서 사용하던 배수관 은 1973년 이전까지 자주 쓰이던 ‘콜타르 에나멜’이 피복된 ‘도복장강관’이다. 여기서 도복장강관이란, 수도관으로 이용되는 강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도복장(물체 표면에 고체 보호막을 만들어 주는 도료를 강관 내부에 코팅하는 것)’ 이라는 특수처리를 한 관을 의미한다.

도복장강관의 도료로 콜타르 에나멜과 블로운 아스팔트가 주로 사용되는데, 두 재료 모두 유기용매(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 상태의 화학 물질)에 쉽게 녹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관이 노후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부식돼 떨어져 나가 수돗물에 섞여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성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1994년 이전에 부설된 급수관도 문제가 됐다. 노후된 급수관 대부분에는 강관에 아연(Zn)을 코팅한 아연도강관이 사용됐다. 그런데 강관 내부에 코팅돼 있던 아연이 이온을 발생시키고 쉽게 부식돼 수돗물 오염에 기여한 것이다.

이같은 기존 재질의 단점 때문에 서울시는 다른 재질로 수도관을 부설하기로 했다. 콜타르 에나멜 도복장강관을 대 할 배수관은 ‘덕타일 주철관’이다. 덕타일 주철관은 기존 배수관 재질에 비해 부식이 적은 편이다. 쇠 중에서도 탄소 함유량이 3~3.6%인 주철로 만든 주철관은 탄소(C)를 함유해 쇠보다 가볍고, 합금속이라는 성질 때문에 더 단단하다. 덕타일 주철관은 여기에 세륨(Ce)이나 마그네슘(Mg) 을 첨가해 만든 것으로, 강도가 매우 높아 수도관으로 많이 이용된다.

급수관으로는 아연도강관에 비해 화학 반응이 적은 스테인리스강관이 주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는 스테인리스강관 이 물을 만났을 때 ‘부동태 피막’이라는 보호막을 형성해 쉽게 부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강관은 부동태 피막을 형성시키는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해 제작된다. 첫째는 질산을 이용한 것이다. 철(Fe)과 탄소를 결합해 만든 강을 질산(HNO₃) 속에 넣고 질산 농도를 약 65%로 유지하면 산이 철의 표면에 피막을 형성한다. 또, 일반 철에 크롬(Cr)을 12% 이상의 비율로 첨가했을 때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박 교수는 “스테인리스강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내식성과 위생성이 매우 우수하다. 강도도 아연도강 관보다 높아 압력에 견디는 힘이 강해 수 도관으로 사용하기에 더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에서 혼탁수 문제가 발생한 또 다른 이유로는 ‘사고 지역의 특수한 위치’ 도 한 몫했다. 수돗물은 ▲취수원 ▲취수장 ▲착수정 ▲혼화지 ▲응집지 ▲침전지 ▲여과지 ▲염소투입실 ▲정수지 ▲배수지의 과정을 거쳐 가정으로 공급된다. 이 중 배수지에서 가정을 잇는 수도관을 배수관이라고 하는데, 혼탁수가 유입된 문래동은 바로 이 배수관의 끝부분인 ‘관말지역’ 에 위치한다. 박 교수는 “관말지역은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손가락, 발가락의 말단부분과 같다. 따라서 정체수로 인한 퇴적물이 많이 쌓여 수질 악화가 쉽게 발생해 이를 예방하기 위한 유지설비가 필요한 지역” 이라고 설명했다.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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