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자의 사(史)담> 제주를 비춘 은혜로운 빛 김만덕 (한성대신문, 554호)

    • 입력 2020-04-06 00:00
    • |
    • 수정 2020-04-04 22:45

사진 제공 : 김만덕기념관

제주에 유배를 온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재물로 수천 명의 제주도민을 살려낸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감복한 김정희는 친필로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로운 빛이 세상에 퍼짐)라고 적은 편액(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위에 거는 액자)을 그의 후손에게 전했다. 그는 바로 ‘김만덕(1739~1812)’, 도탄에 빠진 제주에 은혜의 빛을 비춘 인물이다.

김만덕은 탐라(現 제주)에서 양인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10살에 부모를 여의고 기녀의 집에 의탁하면서 기생이 됐다. 그는 매우 뛰어난 재주를 지녀 기생으로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됐으나 20살 무렵 기생의 삶을 버리고 복권을 청원해 다시 양인으로 복귀했다. 이에 대해 이정화(동양대학교 교양학부)교수는 “김만덕은 풍족하고 안정적인 생활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며 “종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기생대신 진취적인 삶을 전개하고자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게 양인이 된 그는 제주의 특산품에 주목했다. 삿갓과 말 갈기 등 제주의 특산품을 육지와 교역해 많은 수익을 올렸다. 또한, 물가를 잘 예측해 막대한 이익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기업인으로서 뛰어난 장사수단을 보여줬다.

그러던 1795년(정조 19년), 제주도에 큰흉년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 이에 김만덕은 자신의 재물로 육지에서 쌀을 대량 구매해 굶고 있는 제주 백성을 구휼했다. 당시 김만덕이 구매한 쌀은 삼백 석에서 오백 석 정도로 이는 한 석이 144kg인 것을 감안할 때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조는 그에게소원을 물었고 그는 “임금님을 알현하고 금강산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출륙금지령으로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제주여인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정조는 그 소원을 받아들여 그가 육지로 올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고 그녀가 육지에있는 동안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그녀는 물질적인 가치 대신 정신적 가치를 중요히 여겨, 금강산 유람과 같은 여행적 경험을 요구한것”이라고 말했다. 또한“‘제민(濟民)’은 어려운백성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라며 “김만덕의 실천력은 이러한 제민의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우리는 그의 제민정신을 공부해 실천하고, 후대에 계승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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