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정한 청년다움이란 (한성대신문, 554호)

    • 입력 202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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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06 20:37

“(청년들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답을 드릴 수 없지만 먼저 청춘을 보낸 선배로서 여러분이 청년의 시간을 온전히 청년답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한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전한 축사의 일부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청년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청년다운 삶일까? 혹자는 이에 대해 ‘욜로(YOLO)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을, 또 다른 혹자는 ‘치열하게 사는 것’을 청년답다고 칭할 것이다. 사람마다 ‘청년다움’을 정의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기자는 본인을 가두고 일상을 규정했던 틀에서 벗어나 기꺼이 ‘성장하는 것’을 말하려 한다.

기자에게는 그 첫걸음이 아르바이트였으며, 두 번째 걸음이 학보사였다. 학보사는 늦은 퇴근, 수면 부족 등 사회생활의 일부를 경험해보는 기분을 선사했다. 이로 인해 초반부터 부모님과의 갈등이 잦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또 건강상의 이유로 아침저녁마다 잔소리로 나무라셨기 때문이다. “지금이 몇 신데 이제 들어오냐”는 말과 함께 그만두라는 단적인 말씀까지 하셨다.

하지만 본인의 힘으로 껍질을 벗지 못한 새는 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법이다. 기자는 ‘알’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부모님의 품속에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뜻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다. 당시의 두려움이 무색하게 틀을 깬 지금, 기자에게는 그 도전이 ‘배움’의 시간이자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어사전에서는 ‘청년’을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청년기는 적극적으로 본인을 계발하고 성장하며 인생을 배워가는 시기다. 청춘이라 아프게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틀에서 벗어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다른 걸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한계에 다다를 수 있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알을 깨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고, 틀을 깨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고.

안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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