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봄을 기다리며 (한성대신문, 555호)

    • 입력 202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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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25 20:08

사월의 한 가운데,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해가 이제는 제법 따스하다. 일어나 보면 두터운 이불은 발길질에 한 모퉁이씩 접혀있고, 얼마 전부터는 전기장판도 잘 켜지 않는다. 한 겨울에나 입었던 옷은 이미 하나 둘 씩 장롱 안을 차지하고 있다. 볕 없는 곳에서 퀘퀘해진 옷에는 유연제 향을 입혀 마지막 겨울을 털어내고, 잘 펴서 건조대 위에 누이면 어느새 나의 방에는 자그마한 봄이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길가에는, 온통 푸른빛이다. 형형색색으로 흐드러지던 순간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나무에는 싱그러운 푸른 잎만 돋아 있다. 해를 받으며 걷다 보면 문득 겨울은 까마득할 따름이고, 봄이라 할 만한 것은 벌써 저만치 멀어진 것 같다. ‘봄’. 유달리 낯설다. 잠시 꽃잎으로 화사했고 보드라웠지만 진정 봄이 왔던가 짚어 보면, 전혀 봄답지가 않기 때문이다. 겨울보다 움츠려, 빼곡히 말라 있던 기억의 나날.

따사로움 아래서도 느껴지지 않는 봄. 그것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일상, 그 결핍의 현재에 있다. 지금의 봄은 텅 비어있기 만하다.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가만 주위를 살펴보면 사월은 아직도 한겨울에 멈춰 있는 것만 같다. 흩날리는 꽃잎이 아름답다 한들 ‘우리’ 없이 어찌 풍경 그 이상일 수 있을까. 고요한 도시와 불빛이 밝혀지지 않는 교정(校庭). ‘봄’에 대한 기다림이란, 계절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 계절을 향유하는 우리에게로 뻗어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는 요즘이다.

이제는 여름을 바라보아야 할 순간임에도, 나는 여전히 봄을 기다린다. 다시 길목이 두근거림으로 가득할 날을, 살랑이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북적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막연함 속에서도 이 바람을 놓지 못한다. 그 시절이 가져올 생기와 살아있음으로 인해. 늦은 봄일지언정 그 짧은 인사만으로 시간에 어린 한기는 한 순간에 녹아내릴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그 순간, 봄의 풍요 속에서 한 해의 시작은 다시 그려질 것이므로. 기다림의 끝에 맺힌 싱그러움은 곧 피어나리라. 그 자그마한 믿음으로 오늘도 하나의 기다림을 더해 본다.

최준수(대학원 한국어문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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