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진심이 작품이 될 때 가지는 힘을 믿어요” 282북스 강미선 대표 (한성대신문, 555호)

    • 입력 202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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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26 21:09
사진 제공 : 강미선 대표

우리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쉽게 아무는 몸의 상처와 달리 금방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 바로 ‘마음의 상처’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지 않으면 곪아버린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안고 살아간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은 무엇일까? 시인 가나모리 우나코는 “흙에 새긴 글씨는 물에 젖으면 사라진다. 우리 내면의 상처도 부드럽게 다스리면 아문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출판사가 있다. 마음을 치유하고 진심을 전달하는 ‘282북스’다. 이곳의 대표 강미선 (32) 씨는 소외된 이들이 진심을 드러내고 치유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물다

그는 처음부터 출판사를 설립할 생각이 없었다. 대학시절, 공연기획을 전공했을 정도로 출판과는 관련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일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치료할 돈도, 용기도 없던 그가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와 독서였다. “글쓰기와 독서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습을 했어요. 덕분에 우울증에서 벗어 났죠. 이 활동들이 마음 치유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평일에는 사회적 기업에서 기획자로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방문객들과 글쓰기 치유 봉사활동을 했어요.”

강 대표는 도서관 봉사활동 중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과의 치유 글쓰기 활동에 감화를 받았다. 피해 학생들의 상처가 드러난 글을 자신만 볼 것이 아니라 ‘진짜 보고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학생의 글을 포스트잇에 적어 근방 학교 담에 붙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포스트잇을 본 한 가해 학생이 그를 찾아왔다.

“그 학생은 자긴 피해 학생에게 이런 상처가 있는지 몰랐다며 저를 찾아왔어요. 그때 ‘말하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았어요. 그저 상처를 진실한 문장으로 드러냈을 뿐인데 가해자의 마음까지 움직인 거죠. 그렇게 지금의 282북스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작품에 상처를 담다

282북스는 원고를 투고 받아 출판하는 일반적인 출판사와는 조금 결이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가 만들어낸 ‘소외그룹’의 이야기를 예술 활동으로 사회에 반영 한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소외 그룹을 선정하고, 그들과 글쓰기 활동을 진행한다. 더불어 연기,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예술 활동과 결합해 치유활동을 한 뒤 최종적으로 책을 출판한다.

“용기를 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도 보고 듣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바뀌는 것은 없어요. 그게 바로 책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상처를 책으로 표현해 세상에 전달하는 것이 282북스의 역할입니다. 즉, 사회에 가려진 면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거죠.”

282북스는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시, 연극 등 또 다른 예술 활동으로 발전시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여기에는 치유만큼이나 공유를 중요하게 여긴 강 대표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는 공유를 통해 자신의 상처 치유뿐만 아니라 편견과 혐오가 섞인 사회적 인식 자체를 바꾸고자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6개월. 282북스는 한해에 2~3개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그는 한 프로젝트에 그만큼 많은 애정과 노력을 쏟아내고 있다.

진심이 닿을 때까지

▲강 대표가 그동안 진행했던 ‘우리같이 행복하개’, ‘도시의 문장들;귀천’, ‘FM36.9 도시라디오’ 프로젝트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말 한마디는 그에게 확신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줬다.

“누구나 쉽게 소외그룹에 포함될 수 있을 만큼 혐오와 편견은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사람들이 소외 그룹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282북스는 지하철 택배 노인기사, 폐지 줍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혐오와 편견에 맞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강 대표는 특히 폐지 줍는 노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노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책에 담고, 사진전을 개최하는 프로젝트다.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인해 대부분의 오프라인 모임이 취소되면서 비대면 콘텐츠 제작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혐오와 편견에 맞서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심이 작품이 될 때 가지는 힘을 믿는다’는 강 대표는 다음과 같이 282북스의 마지막을 꿈꾼다.

“282북스에서 282는 이파리를 의미해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파리인거죠. 사람들은 이파리가 달려있는 나무에서 쉬어 가기도 하고 열매를 따먹기도 하면서 이용해요. 더 많은 이파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서 이름 그대로 282개의 이파리, 즉 이야기가 모인다면 282북스의 소명은 끝나는 거예요.”

박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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