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와, 당국의 반역자이자 반동세력 형제단의 수장인 ‘골드스타인’이 등장한다. 오세아니아의 외부당원은 골드스타인을 향해 증오를 보내는 집회, ‘2분의 증오’에 반강제로 참가해야 한다. 집회에서 당원들은 골드스타인의 모습을 향해 욕설과 화를 퍼붓는다.
하지만 누구도 골드스타인과 직접 만난적이 없다. 주인공이 모종의 일을 계기로 형제단과 접촉을 시도하지만 형제단 또한 실존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골드스타인과 형제단은 허상이자 당국의 함정이다. 집회는내부 결속을 위해 인위적으로 적을 만들고, 이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생성한다.
지금 세상은 증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을 트집 잡고 시비를 걸거나 성별, 연령, 인종, 학력 등으로 사람을 가르고 증오를 심는다. 인터넷에선 과격한 주장을 퍼뜨리고 선동한다. 증오와 차별적인 발언이 인터넷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2분의 증오와는 다르게 실의 증오는 언제나 계속된다. 서로가 증오를 교환한다. 듣는 사람은 또 다른 증오와 차별적인 발언으로 응수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다양한 증오 발언을 목격했다. 어느 당 의원들은 5·18 민주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모욕했고,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 지지자들의 결속을 위해서 말이다. 그들의 잘못된 이야기 속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시민들은 골드스타인과 형제단으로 변한다.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조작된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고 대중에 퍼뜨린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가족을 잃은 이의 슬픔이 더욱 깊어질 따름이다.
내부의 결속을 위해 적을 만든다. 2분의 증오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과격한 주장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 주장 중 일부는 현실에 떠돈다. 아무 의미 없는 분노를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지켜보면 매우 우습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빨리 이 분노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쯤 마음속 골드스타인을 버릴 수 있을까?
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