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코로나19와 세계화의 불안 요소 (한성대신문, 556호)

    • 입력 202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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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5-24 01:33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세계화’라는 단어를 기억하는가? 많은 사람이 부르짖었던 그 세계화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등장과 팬데믹 선언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세계화의 방향성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그간 우리 주변에 숨어있던 세계화의 불안 요소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터져 나왔을 요소가 코로나 덕분에 더욱 빨리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세계화의 이면에 숨어있던 불안 요소는 무엇인가? 그 답은 분노와 증오다. 물론 분노와 증오는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해왔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줄 도구로, 누군가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도구로 분노와 증오를 사용해왔다. 물론 코로나19가 분노와 증오를 만들어 냈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 것이다. 다만, 분노와 증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다.

분노와 증오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곳은 정치권이다. 정치의 세계는 이미 분노와 증오가 만연한 세계다. 정치 집단은 편을 가르고 격렬하게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내비친다. 코로나19 이후 국제적으로 퍼진 동양인 혐오 역시 대표적인 예다. 동양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인 혐오가 나타났다. 대중은 그들이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녔다며 분노와 증오를 담아 적대시했다.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집단을 적대시하는 사례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나타난다.

다시 세계화로 돌아오자. 왜 우리는 어린 시절, ‘세계화’의 중요성을 가르침 받았을까? 세계화라는 개념을 통해 화합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했으리라 생각한다. 분노와 증오는 누군가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이익은 단기적이며, 소수에 국한된다.

분노와 증오가 팽배해진 사회는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화합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화합한다면 나와 다른 존재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분노와 증오가 번져가는 상황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가치는, 분명 ‘함께’일 거라 믿는다.

이상준(인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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