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1953년 제정된 이래로 66년 만에, 그리고 2012년 헌재의 낙태죄 합헌 판결 후 7년 만의 일이었다. 헌재의 결정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관한 결정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으로서 헌법적 권리임을 확인해 줬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올해 말까지, 개정안을 발의해야 하지만 아직 발의된 것은 없다. 최근에야 정부가 낙태죄 존치를 골자로 한 입법예고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낙태죄 조항을 유지시킨 채, 임신 14주 이내와 강간 피해 외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임신중지 허용 사유로 추가했다. 또한, 14주에서 24주 내 임신한 사람은 임신중지를 위해 숙려기간과 상담 의무제도를 거치는 안을 신설했다. 낙태죄 폐지 대신 처벌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항이라고 한다. 낙태죄 존치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을 당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은 ‘낙태죄 조항에 의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이 실효적으로 달성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낙태죄 처벌은 임신중단 건수에 비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2018년도 인공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2008년 전체 24만1,411건의 임신중단 중 4건, 2009년 18만7,958건 중 4건, 2010년 16만8,738건 중 7건만 낙태죄로 기소됐다. 이마저도 대부분 남자친구 혹은 남편, 남성측 가족이 여성을 협박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었다.
정말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하고 싶다면 처벌이 아닌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에 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풍조 탓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고작 15시간, 초·중·고등학교 평균 5시간뿐이다. 사전 예방을 위해서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피임방법, 인권, 책 임감 학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등하고 안전한 성적 권리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실효성없는 낙태죄 조항 때문에 많은 여성이 죽어간다. 매년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로 인해 전 세계 850만여 명의 여성이 합병증을 겪고 5만여 명 여성이 사망한다. 안전한 임신중지만 가능하다면 죽지 않아도 될 여성이다. 루마니아는 지난 1966년 낙태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1983년 모성사망비(임신 중이거나 출산 뒤 7주 이내 사망하는 여성의 숫자)가 금지 전보다 7배 높아졌다. 이 기간 10만 명의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9년 낙태 금지법이 폐지되자 한해 만에 모성사망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헌재도 역시 “수많은 시대와 사회에서 여성들은 형벌의 위하는 무릅쓰고 자신의 건강 또는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원치 않은 임신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기 낙태를 감행해왔음을 알 수 있다” 며 여성의 건강과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게 했음을 인정했다.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헌재는 이미 우리가 가야할 방향 을 알려줬다. 대체입법 시한이 불과 석 달채 남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이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이어선 안 된다.
박희연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