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잘 구워진 소고기가 있다고 하자. 겉에는 적당히 익어서 그릴 자국도 있고,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육즙이 번질 것 같은 잘 구워진 고기다. 한 사람은 고기 한 점 먹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해가며 고기의 질감과 구워진 정도를 칭찬하면서 음식을 음미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다소 게걸스럽게 고기를 입안에 밀어 넣으며 우걱우걱 양껏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다. 식사가 끝났을 때, 누가 잘 먹은 것인가? 미식가인가 대식가인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독서가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잘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식가보다는 미식가 쪽이다. 독서와 관련해 잘 읽는 방법에 대한 책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책의 맛을 잘 알기 위해서는 많이 읽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평생을 그럴 수는 없다고 해도, 그런 시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식가는 분명히 어느 한 시절 대식가였을 것이다. 그것도 한 종류의 음식만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이 먹는 대식가였을 것이다. 많이 읽는 것보다 잘 읽 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독서가도 분명히 어느 한 시절 대식가처럼 많이 읽어댔던 사람이다.
진정한 미식가가 똑같은 음식에서도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감을 느끼는 것처럼, 진정한 독서가는 남들이 읽지 못한 것을 읽는다. 진정한 미식가(독서가)는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낯선 음식(책)을 먹어도 맛을 감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독서가 중의 한 사람인 장석주 시인은 자신의 저서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에서 “영혼의 갈망이 채워질 때까지 정신없이 허겁지겁 읽어야 할 책도 있는 법”이라고 적고 있다. 미식가에 이르는 길에 대식가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대식가의 ‘단계’ 혹은 ‘시기’가 대학 시절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볼 것, 재미있는 것이 천지인 지금, 진부하게 독서냐고?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더군다나 웬만하면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하는 코로나 시대이지 않은가.
강호정(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