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사 작성은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누군가와 인터뷰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어디에 연락하고, 처음 멘트는 뭐라 할지, 자연스럽게 답변을 유도하는 방법은 뭔지···. 첫 취재원과 전화 한 통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화 버튼 하나 누르는 것이 그 당시에는 무겁게만 다가왔다. 한 학기 내내 인터뷰를 해야 한다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걱정 많았던 필자는 기자로 1년 6개월을 보내고도 편집국장으로 1년을 더 보내게 됐다. 편집국장의 자리는 각오한 것보다 더 고달팠다. 내 기사만 신경썼던 기자 시절과 달리 편집국장은 모든 기자의 기사를 신경써야 했다. 극히 평범한 실력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신문사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평가하고 결정해야 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 사람과 편집국장·기자의 관계로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매번 무언가를 결정하고 지시를 내릴 때는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행여 오보가 나진 않을까, 독자들이 찾는 신문을 만들 수 있을까, 기자들이 취재 도중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내가 이 집 단을 실수 없이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매일 수만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했던 시간 끝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필자의 결론은 편집국장이자 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루는 편집국장으로서 기자들과의 관계를 이어갔고 다른 날은 독자로서 기자들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사를 취재하고 작성하는 데 능숙해질 순 있어도 완전해질 순 없었다. 완전했다고 생각한 취재에도 빈틈은 존재했고,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논리에도 뚫릴 구멍은 있었다. 이전에 보고를 받아 알고 있는 내용이어도 처음 보는 것처럼 몇 번이고 다시 봤다. 각 주체의 입장, 기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필자의 비판이 옳은지도 의심했다. 너무 많이 봐서,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편집국장이기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독자는 찾아 낼 수 있었다.
완전을 향한 길 위에 선 필자 곁에 기자들이 함께 있었다. 필자는 어떤 아이템을 선정할지,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취재할지, 기사는 어떤 방향으로 작성할지 등을 기자들과 공유하며, 열띤 대화를 나눴다. 혼자선 부족할 수밖에 없어 기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쌓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필자는 이 지면을 끝으로 이제 한성대신문사 편집국장이 아닌 학생으로 돌아간다. 2년 6개월의 활동을 회고하며, 마무리를 준비할 때다. 그 숱한 시간 동안 필자가 만든 신문이 완전함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신문을 만들었던 기자들이 함께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완전함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신문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매번 변화를 맞이하는 곳이기에 완전한 신문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과정은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같아서 혼자 걸어가다간 중간에 지칠 수밖에 없다. 가다가 멈추고 싶고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있다. 때론 독자가 돼 논의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나아갈 때, 완전이라는 결승선이 가까워질 것이다. 필자가 그랬듯 말이다.
박희연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