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나랑 산에 가자 (한성대신문, 570호)

    • 입력 2021-09-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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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9-23 00:01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산은 내게 죽비를 내려치는 스승이자 다시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는 충전소다.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끼거나 사람과 일에 부딪히며 조금씩 지쳐갈 때, 나는 어김없이 산으로 향한다. 세상사가 그렇듯 산에서도 목표한 지점까지 오르는 일은 무척 힘이 든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나는 살아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 위에 둥둥 떠서 흐르고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말이다. 산을 오를 때 내 심장은 그제야 뛰기 시작한다. 그제야 살아 있다고, 그러니 다시 살라고 소리친다. 산을 오를 때 느끼는 힘듦은 내가 지은 크고 작은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멀리서 보면 오르막뿐일 것만 같은 산길도 어디쯤에선 내리막을 깔아주고, 선물처럼 착한 바람과 멋진 바위, 기특한 나무와 어여쁜 하늘을 선사한다. 그런 산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차이의 감각’이다.

높은 곳에서 저 아래 내가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면, 크고 높고 빽빽하게 들어섰던 건물들이 하나같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다. 돈과 명예에 사로잡힌 사람도, 가진 것 없고 실패한 사람도, 잘나고 못난 사람도,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저 작은 티끌 같아 보일 뿐이다. 보이저호의 카메라를 돌려 40AU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을 보며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던 그 의미를, 836M 백운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 차이의 감각을 사진이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느끼고 나면, 이상하게도 없던 용기가 생긴다. “인간이 저렇게 작은 존재였어? 저렇게 티도 안 난다면 뭐라도 해도 되겠네, 실패하면 어때, 욕 좀 먹으면 어때,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면 되지, 멀리서 보면 티도 안 나는 거, 쫄지 말고 다시 뭐라도 해보자.”하는 용기 말이다. 그렇게 산이 내려치는 죽비를 한 대 맞고 내려오면, 생생하게 다시 심장이 뛰는 사람이 되어 오늘을 실컷 살게 된다.

내가 매 학기 학생들에게 산에 가자고 꼬드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우리 학생들이 타자와 연대하는 힘을 잃을까 봐, 심 장이 뛰는 일을 찾지 못하고 그 푸른 청춘을 그냥 흘려보낼까 봐 무척 염려된다. 그러니 나랑 산에 가자. 산에 가서 심장 뛰는 소리와 차이의 감각을 느끼며 다시 도전할 힘을 얻고 오자. 그러라고 가을이 왔다.

이현정(상상력교양대학 사고와표현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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