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필로소마 개발자 박기범 학생

<편집자주>
누구나 마음속에 품어둔 일을 한 번쯤 세상에 꺼내 펼쳐보고 싶지 않을까. 대학 생활 속에서 그 꿈의 첫걸음을 내딛는다면, 졸업 이후에는 거침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다.
여기 대학 생활 중 자신이 갖고 있던 열망을 현실로 만들어낸 이가 있다. 바로 팀 ‘인정협회’의 박기범(ICT 5) 학생이 그 주인공 중 하나다. 그는 여느 또래처럼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왔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싶다는 다짐 끝에 게임 개발에 도전했다. 그 경험은 단순한 프로젝트를 넘어, 게임 개발자를 자신의 진로로 삼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팀 프로젝트로 탄생한 게임 ‘필로소마’는 국내 굴지의 게임 서비스 플랫폼 ‘STOVE 스토어’에 정식 출시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기자가 본 그는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유독 또렷한 눈빛을 지닌 사람이었다. 대학생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모든 열정과 노력을 학내 활동에 쏟아부으며 가능성을 넓혀갔다. 안 되면 그만, 잘되면 대박. 그가 말하는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는 이 특권을 발판 삼아 실제 경험을 쌓고 진로라는 구체적인 방향을 세워 나갔다. 그렇다면 남은 대학 생활에서 개인이 이뤄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성장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박 학생이 좋아하는 일을 극대화시켜 진로를 설정한 비결에 귀 기울여 보자.
이승희 기자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박 학생은 현재 본교에서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트랙과 게임그래픽디자인트랙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편입생으로, 전적대에서는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여느 학생과 같이 성적에 맞춰 전공을 택하다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한층 깊어졌고 끝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전적대 재학 시절 친구들과 작업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과제물에 대한 감상이 오갔어요. 저는 그 대화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죠. 흥미 없는 전공에 머무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끌리는 분야로 전공을 선택하고자 편입을 결심했죠.”
편입 이후 그는 본교 게임 개발 동아리 ‘Team ODD’에서 게임 디자인 활동에 참여했다. 간단한 게임 삽화를 그리는 등의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2023년 동아리 내 친분이 두터운 부원들과 함께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졸업을 앞두고, 자신이 좋아햐는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리하여 박 학생과 박성찬(컴공 20), 홍기표(컴공 19), 하준원(콘디칼 19) 학생들은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편입 후 전공과 관련된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해진 친구 중 한 명이 3D 그래픽을 공부하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프로그래밍에 능했어요. 자연스럽게 졸업 전에 ‘멋있는 거 하나 만들어 보자’는 얘기가 나왔죠.”
원대한 포부일지라도 현실 앞에서 계획은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다. 이들의 게임 개발 계획도 유야무야되며 좀처럼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박기범 학생은 돌연 친구들에게 구상한 아이디어를 졸업 전시로 선보이자고 강력히 제안했다. 막연히 그려왔던 구상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지에서다.
“저희가 모두 좋아하는 게임 장르인 소울라이크*로 게임을 구현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나 실질적인 이행은 없었죠. 제가 4학년이 되면서 제대로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졌어요. 억지로라도 추진하지 않으면 구상만 하다가 졸업할 것 같더라고요. 교수님께 졸업 전시 과제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는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본격적인 개발을 준비하고자 했죠.”

실패도 자산이 되는 개발의 시간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팀 ‘인정협회’가 탄생하며 게임 개발의 서막이 열렸다. 인정협회는 게임의 세계관과 목표 등 세부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이는 하승완(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의 도움을 받아 2024 산학협력 공동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프로젝트는 교수·학생·기업 등으로 구성된 팀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사업이다.
“저는 게임의 컨셉 디자인과 3D 모션, 효과음을 맡았고, 박성찬 팀원은 레벨 디자인과 기획 전반을 총괄했어요. 하준원 팀원은 3D 모델링을, 홍기표 팀원은 프로그래밍 전반을 담당했고요. 팀명 인정협회는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 이용자가 실력으로 난관을 돌파한 플레이어를 ‘인정’하는 밈에서 착안했어요. 이름처럼 인정받는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었죠. 초기엔 웅장한 그래픽을 갖는 정통 소울라이크 구현을 목표로 삼고 공모전 출품도 계획하며 개발을 이어갔어요.”
그러나 대학생의 역량만으로 고난도의 게임을 개발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구현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적 난관에 직면했다. 웅장한 배경의 구성부터 캐릭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개발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했다.
“게임을 완성도 높게 만들고자 애썼지만, 구현 과정에서 수많은 한계에 부딪혔어요. 처음엔 신화적 요소를 결합한 세계관을 구상했어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죠. 배경이나 몬스터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무엇보다 작업물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점이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죠.”
이에 인정협회는 게임의 차별성을 모색하는 한편, 팀원 각자의 역량에 부합하도록 기획 방향을 일부 조정했다. 세계관과 콘셉트는 비교적 단순하게 설정하되, 복잡한 서사보다는 속도감 있게 임무를 달성해 나가는 구성으로 전환한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콘셉트로 방향을 틀어 웅장한 음악 대신 록 장르의 음악을 삽입했어요. 시원하게 게임의 전투 단계를 돌파하는 형식으로 변경한 거죠. 몬스터는 해골을 기본으로 설정했지만 찢어진 옷 등의 요소를 입혀 전체 분위기와의 조화를 시도했어요. 기본 형태에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사고를 바꾼 거예요.”
더불어 그는 인터넷 자료와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곧바로 실전에 적용했다. 개발 과정에서 특정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각자의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저는 처음에 컨셉 디자인만을 담당했지만, 게임의 3D 모션을 구현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부해 보겠다고 했죠. 제가 2D 캐릭터 원화를 그리면 하 팀원이 3D로 변환하고 함께 게임을 구현하는 유니티 엔진에 적용하는 방식이에요. 처음에는 모션 구현은 물론이고 엔진 사용방법조차 알지 못했어요. 인터넷에서 하나하나 찾아가며 툴 사용법을 익혔고 소울라이크 기반의 게임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며 이를 적용하고자 했어요. 팀원 모두가 각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기술을 새롭게 익혔죠.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화면이 완성됐어요.”
그 결과 2024년 게임 ‘필로소마’가 개발됐다. 현실과 지옥이 뒤얽힌 공간에서 적을 처치하며 성채의 꼭대기에 도달해야 하는 세계관과 그에 맞는 게임 그래픽이 구현됐다. 게임 관련 공모전과 박람회에도 참가하며 성과를 보일 수 있었다. 올해 4월경 국내에서 손꼽히는 게임 서비스 플랫폼 STOVE 스토어에 정식 출시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 저의 졸업 전시가 마무리되면서 게임 제작 프로젝트가 완전히 종료됐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GIGDC, 버닝비버와 같은 게임 관련 박람회·공모전에도 참여했죠. 짧은 기간 내에 높은 난이도의 게임을 잘 구현했기 때문에 게임 서비스 플랫폼에 정식으로 출시하기도 했어요.”

‘시도’라는 씨앗에서 싹튼 진로의 방향
박기범 학생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시도’의 힘을 체감했다. 이를 계기로 졸업을 앞두고 동일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디게임 개발 과정은 강의실 너머의 실전 경험이었고, 사용자가 게임을 즐기는 순간에서 깊은 보람을 느꼈다. 그는 취업보다는 인디게임 개발자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방향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필로소마를 개발하면서 제 역량이 크게 향상됐어요. 또 개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성장할 때의 즐거움을 체감했죠. 특히 원하는 대로 구현해 보고, 그걸 재미있게 즐기는 사용자들을 보며 큰 만족감을 느꼈어요. 졸업 후에도 인디게임 개발을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고요. 잘되면 인디게임 개발 회사 창업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결실로 ‘성장’을 꼽는다. 흔히 학내에서 진행되는 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단순한 과제 수행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목표가 맞물리며 상호 보완적 협력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개인적 성장이 견인됐다는 설명이다.
“보통 팀 프로젝트는 무사히 제출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팀원 모두가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했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완성해 나갈 수 있었어요. 또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단순한 지식이 아닌, 응용력과 유연한 사고를 기를 수 있었어요.”
나아가 그는 학생들에게 학내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시도할 것을 권했다. 단기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가 결국 자기 이해를 높이고 역량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통해 진로와 목표가 구체화되고, 나아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명확히 깨달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생을 위한 학내외 프로젝트는 가볍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임에도 많은 학생이 괜히 지원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도 뭔가 대단한 성과를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거든요. 안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보니 다양한 경험이 쌓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진로를 구체화하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요.”
*소울라이크 : 다크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높은 난이도, 연속된 전투 단계 등이 특징인 게임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