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자격 시대의 단상 (한성대신문, 576호)

    • 입력 202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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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4-01 17:29

이 글은 어느 날 갑자기 의사가 되어 병원에 첫 출근을 하는 꿈으로부터 비롯됐다. 원장 선생의 환대 속에서 병원 문을 들어서며 설레던 순간도 잠시. 꿈속의 자아는 의사 면허가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스스로 단 한 명의 환자도 진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자 제발, 부디 환자가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가슴 졸이며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조바심은 금세 악몽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쫓기듯 현실로 돌아와 써 내려간 글이 이 모양 이 꼴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팬데믹의 출현 이후 위와 같은 강박, 정확히는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자격’이란 낱말을 생각하는 일이 잦다. 시대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선사하는 ‘선생의 자격’ 말이다. 어딘가에 있을 학생을 염두에 두고 단순한 지식을 녹화하는 일이 지속될수록 그러한 생각에 자주 함몰되며 대학의 역할과 선생의 자격을 자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같이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라면 인터넷을 검색해보는 일이 더 빠를지도 모르고 책 한 권을 정독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진 선생과 그러한 강의라도 들어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학생 간의 암묵적 합의는 우리 시대의, 어쩌면 매우 슬픈 자화상이었다. 2년제 대학을 다녔던 학생이라면 실로 환멸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자격을 얻기 위한 나름의 고투가 일면 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자본주의를 지속하게 하는 원천이 과학혁명에 있다고 얘기한다. 돈이란 흘러야 하고 그래야 자본주의가 유지될 것인데, 그렇게 만드는 힘이 과학이 만든 기술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원천은 ‘자격’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자본주의를 살아가게 하고 숨 쉬게 하는 원천인데,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동시에 그러한 욕망을 내려놓을 때 자본주의는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타자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 어쩌면 매우 소박한 욕심을 절대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며 자격을 얻고 그렇게 취득한 자격이 직업을 가져다주는 일. 그리고 그러한 직업이 꿈이라 불리는 우리네 씁쓸한 현실까지 모두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가 깊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자격이 가져오는 책임의 진정성이어야 한다. 일명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서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또한 면허를 취득했다고 해서 어떤 형식이든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당연시되는 ‘자격의 뻔뻔함’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주의를 지속케 하는 또 다른힘의 근원으로서 자격이 함의하고 있는 그러한 신분적 속성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야겠다. 머지않아 도래할 인공지능의 시대는 우리네 욕망을 대신하는, 즉 자격이라는 이름의 계급적 성취를 소거할지도 모르며, 정말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마침표를 찍을지도 모른다. 과학혁명(?), 혁명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과학기술이 자격 시대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다.

임형모(상상력교양대학 기초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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