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몇 년간 대학 내 성비위(性非違)는 이제 화젯거리조차 되지 않는 모양새다. 언어적·신체적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불법촬영 등은 물론, 디지털성범죄 역시 대학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가해자는 학생, 교수, 직원 등으로 다양하다. 이 사태를 보고 있자니 대학이 과연 성범죄와 관련된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 대학 내 성비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도 올바른 해결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대학 내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성교육을 강조한다. 예방교육에 그쳐 있으며, 그마저도 효과를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대학 내 성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한성대신문>은 대학의 성교육이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그 필요성과 구체적인 교육 방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한혜정 기자 [email protected]
대학 내 성교육 미비한 실정
대학 내 성범죄 증가와 유관
방식과 내용 모두 개선 필요
포괄적 성교육으로 나아가야
우선 대학은 법률적으로 성교육 실시의 의무가 있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대학은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실시 ▲기관 내 피해자 보호와 피해 예방을 위한 자체 예방지침 마련 ▲사건발생 시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그 결과를 여성가족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성매매 예방교육,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른 성희롱 예방교육,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을 실시할 수 있음이 명시돼 있다.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대학 내 성교육은 개개인이 아닌 단체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교육 자체가 일방적인 내용 전달에 그치게 돼 개인의 성 가치관을 제고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혜경(젠더리더십트레이닝센터) 대표는 “대규모 교육은 물론 시청각을 비롯한 사이버 교육으로는 다양한 층위의 구성원이 처한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의 자격에 대한 논란도 식지 않는 논쟁거리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할 수 있는 강사의 자격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남발하는 민간자격증만으로는 충분히 자격을 검증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경은(젠더교육센터-HU) 대표는 “국가자격증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며 “성교육이란 인식과 가치관이 반영된 의사결정에 대한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으로서 큰 틀의 기준이 필요하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대학에서 성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현실에 성(性)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인식과 시각이 한몫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성을 논하는 것을 터부시한 나머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없는 성교육의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 및 합의 과정이 전무하다는 말이다. 문 대표는 “성교육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워나가는 과정이지만, 현재 그 이해를 성적인 접촉으로 한정 짓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있다”며 “좋은 연애와 타인과의 관계 등에 대해 질문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학내를 만들기 위해 성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란(서울여자간호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하면 덜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다”며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점진적으로 성에 대한 논의가 닫히지 않은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대학 내 성교육의 부재가 대학 내 성범죄가 증가하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전국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건은 매해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찬민(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82건이었던 대학 내 성범죄는 2019년에 346건이 발생하면서 약 2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성교육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폭력예방교육이 필요한 이유”라며 “대학 내 성범죄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 하나가 성교육인데, 건전한 문화 형성 및 강력한 처벌 등과 병행된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 성교육 참여율은 처참하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21년 ‘성폭력·성희롱·성매매 및 가정폭력 예방교육 실시 현황’을 살펴보면, 학생참여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학이 총 944개 대학 중 731개에 이르렀다. 심지어 학생참여율이 한 자릿수에 그친 대학은 483개로 과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성폭력방지법에 따르면 여성가족부장관은 이에 따른 점검을 매년 실시함으로써 교육이 부실하다고 인정되는 학교에 대해 ‘관리자 특별교육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고등교육법』에 따라 학교 평가 등에 반영하도록 학교 혹은 학교의 장에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에서 “예방교육실시 의무는 기관장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구성원들의 참여가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할 때 대학의 예방교육 실시율은 낮은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직원은 인사고과 점수에 반영하는 등 참여를 권고할 수단이 있지만, 이외의 구성원들은 강제할만한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성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맥락적 성교육이 아닌 단순 범죄 예방 차원의 성교육만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초점을 맞추는 성교육은 폭력예방”이라며 “성교육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이 폭력으로서의 성에서 삶 속에서의 성으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학 내 성교육의 방식과 내용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피교육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해 맞춤형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하며, 일회성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규모 토론 방식이 구체적 해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또한, 대학 내 학점 인정 강좌의 개설도 강조됐다. 정 대표는 “대학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하고, 같아 보이는 구성원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층위가 있다”며 “모두 다른 구성원에게 일괄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교육이 실시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에 각각의 위치성과 책무를 살필 수 있도록 토론 형태의 수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충민(사단법인 푸른아우성) 교육팀장은 “성교육은 평생교육이므로 대학생에게도 필요하다”며 “학생 모두가 성교육을 받는 절대적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학점 인정 강좌 의무 개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역시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 방안’에서 효과적인 교육의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강의나 교육에 대한 피드백 과정이 거의 부재한 것이 문제로 꼽혔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했을 시절, 교육 후에 검증을 받는 일종의 시험이 있었다”며 “통과되는 기준이 굉장히 높았는데, 이러한 피드백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이 대학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포괄적 성교육은 성에 대한 인지적·정서적·신체적·사회적 측면에 대해 배우는 교육과정으로, 자신의 능력, 건강과 복지, 존엄성에 대한 인식 능력, 존중에 기반한 사회적·성적 관계 형성 능력 등을 높일 수 있는 지식·기술· 태도·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실제로 성윤리와 생명윤리, 도덕적 가치관, 남녀의 사회적·심리적·생물학적 이해, 가족의 중요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적인 성교육은 국제적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위험한 행동의 감소 ▲콘돔 사용 증가 ▲피임 증가 등이 포괄적 성교육의 주요 성과로 제시돼 있다. 교육부 역시 대학 내 성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는데, ▲예방교육 외의 성 인식 개선 프로그램 ▲인권 및 평등 관련 교육 ▲다양성 포괄 교육 등의 의견이 모였다. 문 대표는 “포괄적 성교육에서 지향하는 성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단계적이고 섬세한 계획이 요구된다”며 “대학에서는 초·중·고 등에서 진행된 성교육이 올바르게 실천되는 방식으로의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 교육팀장은 “포괄적 성교육이 단순 예방교육의 대체제가 되지 않으려면, 걸맞은 여건과 절대적 교육 시간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