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한성문학상 - 시 부문 심사평> 정밀한 묘사를 통해 서정의 온기 높게 보여줘

    • 입력 2023-12-04 00:00
    • |
    • 수정 2023-12-04 00:00

제38회 한성문학상의 시 부문 응모작들을 세심하게 읽었다. 무엇보다 젊은 학생들의 패기와 깊은 사유, 신선하고 탄력 있는 상상력을 접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활달한 사유와 상상력에 어떤 얼개 같은 것을 두어서 시상을 조금은 구심적으로 조직화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전반적으로 있었다.

당선작 선정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은 「편집증」, 「겨울나기」, 「수선집」이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대체로 부드러운 언어를 활용해 사랑의 감정을 직조하고 있는 것에 비해 「편집증」은 흔들리고 요동치는 사변(思辨)의 거센 파도, 즉 격랑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양극단을 오가는 감정과 생각의 전개는 박진감이 있었다. 깨진 거울 같이 파편화된 감정과 생각의 조각들이 묘하게 시상의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더러는 시어들이 다소 직설적이어서 흠결이 없지 않았다.

「겨울나기」는 한 시기 새의 거처였던 나무가 이제는 나목이 된 상황을 바라보면서 부재에 대해 사유하는 작품으로 이해되었다. 헐벗은 나무로부터 과거의 시간에 있었던 ‘뼈’, ‘울음’, ‘빛’ 등을 복원하는 상상력, 참고 견디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관찰, 그리고 하얀 고요를 읽어내는 시선이 좋았다. 그러나 이 시의 3연에는 주체와 지시 대상이 불분명한 점이 있었다.

「수선집」은 생활과 관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서정의 온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정밀한 눈도 뛰어난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걸친 남방에는 주름이 져서 밑단이 짧아졌다”라는 시구는 묘사의 묘미를 잘 살려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장점은 다른 시편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른 점으로 보아서 습작의 경험이 많은 학생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특징들과 미덕을 감안하여 「수선집」을 제38회 한성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아울러 이번 현상공모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 모든 학생들에게 더 큰 정진을 당부 드린다.

문태준 시인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