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활동반자법, 한 지붕 아래 살면 ‘가족’이다 (한성대신문, 600호)

    • 입력 202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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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5-13 00:00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족(家族)’의 사전적 정의는 부부를 중심으로 해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민법』 제779조 제1항에서도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한 집에서 함께 사는 비혼 동거 커플, 나아가 동성애자 커플은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까.

이들처럼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아닌 경우에도 가족으로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이 있다. 이른바 ‘생활동반자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는 현재 『민법』상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들을 생활동반자관계로 묶는다. 즉 생활동반자들도 현행법상 가족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가족 관계에서만 주어지던 지원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의 형태가 혼인과 혈연관계에 국한되면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됨에 따라 등장했다. 혼인이 당연시되지 않는 사회에서 같이 산다면 가족일 수 있다는 인식이 태동했기 때문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68.5%의 응답자가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조은희(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혼인이나 혈연관계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한다면 1인 가구 수를 감소시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행법에 따라 다양한 가구 형태가 여러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다. 일례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이나 주택 청약 등에서 제한이 생긴다. 배우자의 직장에서 가입하는 건강보험에 함께 가입하고 주택 청약 시 가산점을 부여받을 수 있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해당 지원을 받기 어렵다. 또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조에서 수술 등의 응급의료 동의는 법정대리인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혼인관계에 한해 지원이 이뤄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생활동반자법과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프랑스의 팍스(Pacte Civil de Solidarite) 제도가 대표적이다. 1999년 도입된 팍스 제도는 성별 상관없이 성인인 두 사람이 동거 신청만 해도 혼인신고를 한 이들과 동일한 지원을 제공한다. 동거를 신청한다는 의미의 팍스계약서를 작성해 신고하면 ▲건강보험 ▲부동산 ▲상속 ▲세금 등에서 법적 혼인 관계와 동일한 지원을 보장받는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지만, 국내 법 제정은 정체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진선미(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처음으로 제안했으나 종교계 등의 반대의견이 심해 발의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지난해 4월 용혜인(당시 기본소득당) 의원이 처음으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반발이 존재해 제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종교계 등에서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의견이 강해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어렵다”고 밝혔다.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에는 생활동반자의 ▲정의 ▲성립 ▲해소 ▲효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생활동반자관계’란 대한민국 국적 또는 영주권을 가진 두 성년이 상호 합의에 따라 일상생활, 가사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말한다. 성년이 된 사람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생활동반자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단, 혼인 중이거나 이미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등 반려자가 있는 사람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이러한 생활동반자관계는 ▲당사자 쌍방이 해소에 합의하거나 ▲당사자 일방이 해소를 원하거나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당사자가 다른 사람과 혼인하거나 ▲당사자 간의 혼인이 성립했을 경우 등에 관계 해소가 가능하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해 가족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기존의 가족이 혼인, 혈연에 한정된 것과는 다르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친구 사이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최근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현대 사회에 만연한 동거인도 가족의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다. 김서현(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탄생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여러 갈래의 가치관과 공존한다는 차원에서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현재 허용되지 않은 동성혼의 경우도 법 제정을 통해 혼인에 준하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동성애자도 가족을 형성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평등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교수는 “동성애자도 결혼해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며 “평등하게 살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른 의료 조치도 가능하다. 현행법상 응급의료 동의는 법정대리인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동거인이 갑작스럽게 응급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해도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지만,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응급의료 동의자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강 소장은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됨으로써 응급 상황 발생 시 빠르게 조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대한민국헌법』 제36조에서 규정하는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의 성립 요건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생활동반자법이 비혼 동거와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강 소장은 “보수적인 사회단체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생활동반자법을 악용한다고 여겨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활동반자 간의 자녀가 불안정한 양육 환경 속에서 자랄 위험도 존재한다. 혼외 출산 후 부모가 양육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체된다면 자녀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생활동반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의 경우 양육 환경이 불안정해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활동반자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되다 보니 지원을 받기 위해 위장 결합을 할 수 있다는 빈틈도 존재한다. 생활동반자법이 혼인과 비교했을 때 법적 구속력이 느슨하기에 혜택을 노리고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소장은 “위장 결합이 발생할 경우 국가가 생활동반자를 위해 준비한 예산이 잘못 쓰이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동성애 커플도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 동성 간 결합을 반대하는 의견이 팽배해 이런 여론을 점진적으로 설득시켜나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강 소장은 “동성 결합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생활동반자들의 자녀가 불안정한 양육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다양한 법적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에는 양육자 결정 및 양육비 부담, 면접교섭권* 행사 여부 등을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해 자녀가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조 교수는 “독신이 아닌 생활동반자와 함께 자녀를 키운다면 두 사람이 함께 교감하며 자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장 결합 또한 법령 악용에 대비한 체계적인 절차를 구축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강 소장은 “위장 결합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적 사항을 철저히 작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응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정의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타인과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정유진(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비롯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다양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 여부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첨언했다.

*면접교섭권 :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와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권리

김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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