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MBTI는 지겨워 (한성대신문, 601호)

    • 입력 2024-06-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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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6-17 00:01

당신은 당신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알고 있는가? 어느 순간 MBTI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내가 “MBTI”라고만 말해도 짜증나거나, 지겹거나,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우리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 알파벳 4자리를 부여받은 일련번호처럼 줄줄이 외우고 다닐 수 있게 됐으며, 그 각각에 상응하는 의미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됐다. 필자의 경우에는 매우 모순적이게도 4글자만 들어도 유형의 특징쯤은 떠올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에서 각 MBTI의 성향과 대략적인 성격을 첨예하게 분석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마 필자가 이런 글을 쓴다면, 이 분야의 박사들은 이런 글을 쓰는 MBTI는 무엇이라고 나를 정의 내려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왜 이런 일련의 행위를 피곤하다고 느끼는가. 대한민국 21세기 사회를 전문가들은 혐오, 그리고 낙인의 사회라고 부른다. 어떠한 특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나누는 것이다. 특정 기준은 어떤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기도, 배척당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의 자아실현 욕구는 이상하게도 점점 이뤄지기 힘든 것이 됐다. 여기서 자아실현 욕구란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MBTI는 이상하게도 재미있는 심리 테스트에서 일종의 낙인으로 가기에도 매우 좋은 요소가 됐다.

필자는 이런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우리가 각자의 일련번호 같은 MBTI를 기억하고, 재미있어 한들 결국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고, 어떤 유의미한 발화와 추억과 존재로 다가갈 것인가. 우리가 뭐라고 서로에게 그런 잣대로 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인가. 그냥 MBTI 말고, 학력 말고, 잘 사는 수준 말고, 성별 말고, 나이 말고, 지역 말고 그냥 서로 마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재단(裁斷)에서 서로를, 그리고 각자 자신을 풀어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해도,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런다고 해도, 당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는 재단에 얽매일 수 없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역시 MBTI는 지겹다.

노윤지(인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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