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배터리 충전이 바닷물로 된다고? (한성대신문, 602호)

    • 입력 2024-09-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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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9-02 00:01

배터리(이하 전지)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한 층 나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지가 없었다면 시계, 리모컨 등 가전제품 하나하나마다 전선이 연결돼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기존의 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해수 전지’다.

해수 전지는 말 그대로 바닷물 속 나트륨 이온(Na+)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지다. 나트륨 이온은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리튬 이온 전지의 주원료인 리튬 이온(Li+)과 성질이 비슷하다. 리튬은 매장지와 매장량이 한정돼 있다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리튬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나트륨 이온이 많이 들어있으면서도 지구 수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수가 전지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왕근(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는 “나트륨 전지의 일종인 해수 전지는 리튬 이온 전지의 형태와 소재를 차용하면서 리튬 대신에 나트륨을 사용하고자 개발됐다”며 “해수 전지는 바닷물에서 직접 나트륨을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전했다.

해수 전지는 크게 ▲해수양극부 ▲음극부 ▲분리막으로 나뉜다. ‘해수양극부’는 해수가 유입돼 저장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바닷물 속 염소 이온(Cl-)으로부터 전자를 얻기 위한 전극(電極)도 존재한다. ‘음극부’는 이온들이 잘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용액인 전해질로 채워진 영역이다. 음극부에는 나트륨 이온을 나트륨(Na) 금속 형태로 바꿔 저장하기 위한 전극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이 ‘분리막’이다. 분리막은 해수양극부의 해수와 음극부의 전해질이 섞이지 않도록 분리하지만, 나트륨 이온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모든 영역에 고르게 분포하려는 성질을 가진 나트륨 이온은 분리막을 오가며 해수양극부와 음극부의 나트륨 이온 농도를 맞추게 된다. 김용일(가천대학교 화공생명배터리공학부) 교수는 “해수양극부에는 전도성이 좋은 소재의 전극을, 음극부에서는 나트륨 이온을 모으기 좋은 소재의 전극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해수 전지의 충전과 방전은 나트륨 이온과 전자가 해수양극부와 음극부를 오가며 이뤄진다. 해수 전지를 충전하기 위해 전기를 공급하면 전자가 전선을 통해 해수양극부에서 음극부로 이동한다. 해수양극부에서는 빠져나간 전자를 채우기 위해 바닷물에 녹은 염소 이온의 전자가 전극으로 이동하며, 전자를 잃은 염소 이온은 염소 분자(Cl2)가 된다. 음극부에서는 나트륨 이온이 전자를 얻어 나트륨 금속으로 변해 축적되면 충전이 완료된다. 동시에 해수양극부에 비해 음극부 내의 나트륨 이온 농도가 낮아진다. 마지막으로 두 영역의 나트륨 이온 농도는 평형을 되찾고자 분리막을 통해 나트륨 이온이 해수양극부에서 음극부로 이동하게 된다. 김영식(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해수 전지를 충전하면 음극부 내 전극에서 나트륨 금속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충전된 해수 전지를 사용하면 전압이 발생해 전자는 음극부에서 해수양극부로 향한다. 음극부에서는 빠져나간 전자를 채우기 위해 나트륨 금속에서 전자를 가져온다. 음극부 내 나트륨 금속은 전자를 잃고 나트륨 이온 상태로 돌아간다. 그 결과 해수양극부에 비해 음극부 내의 나트륨 이온 농도가 높아지게 되면 나트륨 이온이 음극부에서 해수양극부로 이동하며 농도를 맞춘다. 해수양극부에서 염소 분자는 전자를 얻고 염소 이온으로 돌아가며 전지가 방전된다. 김용일 교수는 “해수양극부 내부의 염소 분자는 해수를 소독시키며, 방전 과정에서 염소 이온이 돼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수 전지가 ‘해수 담수화’에 활용될 수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수 담수화는 마실 수 없는 해수에서 염분을 제거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추후 해수 전지의 설계를 변형하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을 해수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별도로 분리한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을 활용해 각각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탄소 포집과 물 소독 등도 가능하다. 손문(KIST 물자원순환연구단) 선임연구원은 “해수 전지 기반의 해수 담수화 기술은 기존 해수 담수화 기술에 비해 에너지를 적게 소모한다”고 전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수 전지는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성능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수 전지에 사용되는 분리막의 저항이 높아 나트륨 이온이 원활히 이동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전지의 충·방전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다. 김영식 교수는 “해수 전지는 리튬 이온 전지에 비해 에너지 밀도, 최대 출력 등에서 밀린다”고 설명했다.

해수 전지가 일상 속에서 사용되기 위해 연구진들은 더 나은 소재, 구조 등을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안정성과 성능을 높이기 위한 분리막 연구, 최대 충전 용량을 늘리기 위한 양·음극부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등부표, 해상요트 등 해수 전지를 실용적으로 활용할 방안 또한 논의되고 있다. 이 교수는 “해수 전지는 제안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기술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성능과 경제성 등의 면에서 더욱 성장할 여지가 많다”고 전망했다.

심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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