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민중의 목소리, 시위의 역사 (한성대신문, 519호)

    • 입력 2016-11-28 10:59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하여 다양한 시위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시위들에는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들과 다수의 학생들도 참여하며, 하나의 문화 축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시위의 문화는 어떻게 정착된 것일까?
근대 이전에도 상소의 형태로 일종의 시위가 있었지만, 대중적이며 체계적인 시위의 시초는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이었다. 3·1 운동은 비폭력 만세운동이었다. 사람들은 서울을 8개구로 나누어 행진하면서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조선의 독립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또한 시위에 참여한 어느 학생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써 보이는 일종의 퍼포먼스도 시도했다.
해방 이후 이러한 시위 문화를 계승한 것은 4·19혁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와 사사오입 개헌사건 등에 저항하여 일어난 이 시위는 당시에 유명무실 해졌던 민주화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과도한 진압으로 인해 시위자들은 정부와 수차례 물리적 마찰을 빚었다. 폭압적인 진압 앞에서 시위대도 폭력을 선택하면서 185명의 사상자와 15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4·19혁명 당시 경무대로 향하는 시위대

이로 인해 시위 문화는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평화적인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인 시위’, ‘3 1배 시위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시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중에서 촛불시위가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시위의 유형이다. 촛불시위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자 중학생 효순이미선이의 비극적 사고를 추모한 것을 계기로, 평화시위의 한 방법으로써 확산되었다.
최근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더 쉽게 자신의 시위 목적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위의 파급력을 높이고자 퍼포먼스를 갖춘 시위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하여 진행 중인 하야체조’, ‘시굿선언과 같은 퍼포먼스 시위가 그 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시위의 문화에 큰 변화가 있어왔다. 현재 광화문에서 진행되는 시위들의 방식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따른 것이다. 문화의 장처럼 여겨지는 최근의 시위장은 시위의 역사의 하나의 변환점이다.

유은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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