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부터 온열의자까지, 탄소의 무궁무진한 변화
추운 겨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온열의자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온열의자는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갈 시 자동으로 열을 발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때 온열의자가 효과적으로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물질이 있다. 바로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탄소나노튜브’다.
탄소 원자가 만들어낸 나노튜브의 세계
탄소나노튜브는 튜브 형태의 매우 작은 탄소 동소체(同素體)다. 동소체란 같은 원소로 이뤄져 있지만, 성질과 모양이 다른 물질을 의미한다. 탄소나노튜브 외에도 흑연과 다이아몬드 등이 탄소 동소체에 해당한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가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결합돼 있는 ‘그래핀’으로 구성돼 있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결합하는 이유는 탄소 원자 1개가 다른 탄소 원자 3개와 결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손장엽(KIST 기능성복합소재 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들이 강한 결합을 이루는 육각형 벌집 구조로 돼 있어 매우 튼튼하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2차원 평면 구조를 이루고 있는 탄소 동소체다. 그래핀이 층층이 쌓이면 3차원 구조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연필심’으로 친숙한 흑연이다. 그래핀은 각각의 탄소 원자가 이중결합을 이루고 있어 내구성이 높다. 이중결합은 두 원자 사이에 두 개의 전자쌍, 즉 4개의 전자가 결합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그마 결합과 파이 결합으로 구성된다. 시그마 결합은 두 원자 사이의 결합으로, 각 원자의 원자 궤도가 겹쳐 있어 강한 결합 구조를 형성한다. 반면 파이 결합은 시그마 결합과 수직 방향으로 결합이 이뤄진다. 원자핵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보니 결합력이 비교적 약하다. 이중결합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2개의 탄소 원자(C)에 4개의 수소 원자(H)가 결합된 에틸렌(C2H4)이 있다. 손 책임연구원은 “시그마 결합은 결합축에 따른 안정적인 결합을 형성하며, 파이 결합은 상대적으로 깨지기 쉬운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이중결합 구조를 형성하는 그래핀으로 구성된 탄소나노튜브는 높은 열전도도를 갖는다. 탄소나노튜브가 높은 열전도도를 갖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열이 전달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열의 전달은 용수철의 진동으로 비유해 표현할 수 있다. 용수철에 의해 진동이 전달되듯 열은 원자 간 결합에 의해 전달된다. 이때 앞서 언급된 이중결합 구조는 열의 흐름을 방해하는 불규칙성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탄소나노튜브는 높은 열전도도를 갖게 된다. 손 책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가 육각형 구조로 단단히 연결된 튜브 모양을 이루고 있어 열이 원자 간 결합을 따라 매우 빠르게 전달된다”고 전했다.
그래핀 내부 전자의 이동 속도 또한 탄소나노튜브가 높은 열전도도를 갖게 한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간의 이중결합으로 단단한 결합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불순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열의 전달을 담당하는 전자의 이동 속도가 빠르다. 이때 전자의 이동 속도는 광속에 달할 정도다. 조영식(KIST 탄소융합소재 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전자의 이동이 단일 방향으로 제어되기 때문에 탄소나노튜브의 열전도도가 더욱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탄소나노튜브는 뛰어난 탄성도 지녔다. 그래핀의 얇은 두께와 튜브 형태가 탄소나노튜브의 탄성을 보다 극대화시킨다. 얇은 두께로 인해 충격을 받아도 금방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핀의 두께는 약 0.2nm로, 머리카락 두께의 50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손 책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는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아도 구조가 쉽게 부러지거나 찢어지지 않고 원래 형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갖는다”고 첨언했다.
꿈의 신소재를 구현하다
탄소나노튜브는 여러 합성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탄소나노튜브를 얻을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전기 방전법 ▲레이저 증착법 ▲화학기상증착법 ▲기상합성법이 있다. 전기 방전법은 2개의 흑연 막대를 양극과 음극에 수 mm 간격으로 배치한 다음 전원에 연결했을 때 강력한 방전을 일으켜 탄소나노튜브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면 전기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된다. 저항이 있는 물질에 전류가 흐르면 원자와 전자가 충돌하며 열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후 양 전극 사이의 기체에 열이 가해져 원자를 구성하는 물질인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되는 이온화가 발생한다. 이온화는 화학물질이 안정적인 상태를 찾기 위해 원자가 전자를 잃거나 얻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분리되는 현상이다. 이때 양이온과 음이온의 수가 같아져 전기적인 중성을 띠는 상태가 플라즈마다.
플라즈마는 약 3,000℃의 초고온에서 음전하를 지닌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해돼 이온화된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뜻한다. 기체 상태일 때의 전하량은 플라즈마로 변한 상태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플라즈마가 전기적인 중성을 띠는 이유는 ‘전하량 보존 법칙’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전하량 보존 법칙에 따르면 전하는 새로 만들어지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전하의 총량은 보존된다. 긴 수도관에 물이 고여 있다가 수도꼭지를 틀면 새롭게 쏟아지는 물에 의해 기존에 있던 물이 밀려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 선임연구원은 “플라즈마가 되기 전 기체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플라즈마로 변형됐다 하더라도 전하량 보존 법칙에 의해 플라즈마는 전기적 중성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플라즈마에 의해 전극 사이에 높은 온도의 열이 가해지면 흑연 막대가 기화(氣化)돼 탄소 원자가 방출된다. 방출된 탄소 원자는 냉각 장치에 의해 응결돼 그래핀을 형성한다. 이때 그래핀이 원기둥 형태로 말린 것이 바로 탄소나노튜브다. 이 과정에서 높은 수율*의 탄소나노튜브를 얻기 위해 철, 니켈, 코발트와 같은 금속 촉매를 흑연 막대에 넣는다. 금속 촉매는 탄소 원자가 올바른 위치에 배열되도록 길잡이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육각형 벌집 형태의 탄소나노튜브가 형성된다. 조 선임연구원은 “탄소 원자는 금속 촉매의 크기에 맞는 직경의 탄소나노튜브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전기 방전법에 이어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이 레이저 증착법이다. 레이저 증착법은 금속 촉매가 포함된 흑연 막대에 강력한 레이저를 발사해 흑연을 가열한 후 탄소 원자를 기화시키는 방법이다. 기화된 탄소 원자는 냉각 장치에 의해 기화된 탄소 원자를 응결시켜 탄소나노튜브를 형성한다. 손 책임연구원은 “레이저 증착법은 정교한 탄소나노튜브 제작과 고품질의 결과물을 얻는 데 유리한 방법”이라며 “연구 및 고성능 응용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다”고 말했다.
현재에 이르러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화학기상증착법이 사용되고 있다. 기판** 위에 탄소 원자가 올바르게 배열되도록 철과 니켈 등의 금속 촉매를 얇게 코팅한다. 이후 메탄과 같은 탄소가 포함된 기체를 합성 장치에 주입한 뒤 약 700~900℃의 고온에서 가열하면 탄소 기체가 분해되며 탄소 원자가 금속 촉매 표면에 붙게 된다. 이때 탄소 원자와 금속 촉매가 결합되면서 촉매 표면 위에 탄소나노튜브가 형성된다. 조 선임연구원은 “화학기상증착법은 기판 위에 촉매를 고정시켰기 때문에 탄소나노튜브가 수직으로 성장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전했다.
기상합성법은 화학기상증착법과 달리 기판을 사용하지 않고 공중에서 탄소나노튜브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가열로 내부에 탄소가 포함된 기체와 분말 형태의 금속 촉매를 주입한 후 약 1,000℃의 고온으로 가열하면 탄소 기체가 분해되며 탄소 원자가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탄소 원자가 공중에 떠다니는 금속 촉매와 결합하면 탄소나노튜브가 형성된다. 이때 형성된 탄소나노튜브는 마치 솜사탕과 같은 형태를 띤다. 이것을 냉각시켜 코일에 감으면 필름 형태의 탄소나노튜브를 얻을 수 있으며, 수조에 담궈서 응축시킨 후 코일에 감게 되면 실처럼 얇은 형태로 변해 섬유 형태의 탄소나노튜브를 얻을 수 있다. 손 책임연구원은 “기상합성법은 대량 생산에 적합한 장점을 가진다”고 첨언했다.
첨단 산업을 선도하다
탄소나노튜브는 ▲강도 ▲탄성 ▲열전도도 ▲전기전도도가 높아 다양한 부문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탄소나노튜브의 강도는 강철의 200배, 전기전도도는 구리의 100배에 달하며 97.7%의 빛 투과율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탄소나노튜브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투명 히터 등에 활용된다. 손 책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는 전자기기, 에너지 저장장치,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탄소나노튜브가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손 책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는 효율적인 전자제품, 친환경 에너지 기술, 차세대 복합재료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탄소나노튜브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고 전한다. 조 선임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의 우수한 성질을 현실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연구가 바탕이 된다면 탄소나노튜브는 미래를 책임질 소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율 : 원자재에 화학적 과정을 가해 원하는 물질을 얻을 때, 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기판 : 전기 회로가 편성돼 있는 판
박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