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책이 선사한 특별한 순간 (한성대신문, 606호)

    • 입력 2024-12-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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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12-16 00:02

<편집자주>

지난 여름, 국제 도서전에 청년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더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독서 열풍이 본격적으로 일었다. 지금의 청년은 독서 그 자체를 즐긴다. 그리고 그 방식 또한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 간다. 책 속 세계로 빠져들기 위한 매개체가 된 ‘팝업스토어’, 독서와 술을 함께 즐기는 ‘북바(BookBar)’가 독서 유행의 중심에 있다. 이는 독서가 청년층에게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년들은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며 자기계발의 도구로 이용한다. 이들은 무언가에 대한 집중력을 향상시키고자 독서 후 ‘필사’를 진행하거나 강제적으로 전자기기와 멀어지고자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다. 이를 넘어 개인만의 ‘프라이빗 독서 공간’을 찾아 휴식을 취하며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청년들은 왜 독서를 넘어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그 이유를 탐구해보자.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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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느끼고, 체험하라!

청년은 독서를 통해 더 깊은 연결을 추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전 연령층 중 20대의 독서율이 75.5%를 기록했다. 성인 전체를 대상으로 집계한 종합 독서율은 지난 ▲2019년 55.7% ▲2021년 47.5% ▲2023년 43.0%로 꾸준한 하락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중 20대의 독서율은 ▲2019년 77.8% ▲2021년 78.1% ▲2023년 74.5%로 꾸준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지능형전자시스템전공 1학년에 재학 중인 박규리 학생은 “최근 들어 여가시간에 독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 다”며 “청년들의 문해력 저하가 대두되는 요즘 시대에 취미가 독서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슈 타이들 북 컬처>의 팝업 전시



청년층에게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다양한 경험과 함께 책 속 세계로 몰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은 책을 가만히 앉아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책을 통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책을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는 청년들에게 책과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특별한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통상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며, 특정 매장을 테마에 맞게 꾸미고 관련 제품 판매 및 전시하며 브랜드를 홍보하는 매장이다. 독서 관련 팝업스토어는 출판사나 온라인 독서 플랫폼, 작가 등 책과 관련한 브랜드나 인물을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한다. 이처럼 책을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는 방문하는 독자 들에게 책에 대한 몰입감을 더욱이 선사한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 동안 전자책을 대여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가 있다. 해당 팝업 스토어의 경우 해당 플랫폼에서 인기를 끈 하나의 웹소설을 주제로 잡아 공간을 해당 웹소설의 배경으로 장소를 구현했다. 팝업스토어 내부 공간은 웹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와 이야기 속 흐름이 이어지도록 구성됐다. 팝업스토어 입장과 동시에 사전에 제작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웹소설 속 이야기의 흐름을 직접 느낄 수 있게 구현된 것이다. 이러한 팝업스토어의 특색은 방문객들에게 마치 책 속으로 들어간 듯한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박 학생은 “팝업스토어에 방문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책 속을 구현한 팝업스토어에 방문하면 내 자신이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책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팝업스토어에서 직접 체험하고 구매까지 가능하다는 점도 청년층의 발길을 이끌었다. 팝업스토어에서는 해당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뿐만 아니라 관련한 굿즈도 구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명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를 테마로 한 팝업스토어는 호그와트 교복을 직접 착용해 보고 구매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과 관련된 이색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문화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에 비롯된다. 박 학생은 “평소에 관심 있게 본 책의 굿즈를 구매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크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마이리틀케이브’에서 즐길 수 있는 술과 책

청년들은 책과 관련된 색다른 경험을 위해 북바와 같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북바는 칵테일이나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을 즐기는 공간에서 조용히 독서가 가능한 곳이다. 술을 책과 함께 마신다는 색다른 경험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책에 대한 몰입감 형성과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북바는 책 속에 나오는 술을 실제로 맛보게 하며 작가가 가진 생각과 감정 그리고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일부 북바는 책에 등장하는 술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메뉴를 제공하기도 한다. 청년들은 자신이 읽은 책 속에서 봤던 술을 마심으로써 직접 책 속으로 들어간 듯한 색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소설인 『인간 실격』에 등장하는 압생트라는 술을 구현한 것이 그 예시다. 독자들은 책 속의 설명으로만 압생트의 맛을 추측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 압 생트를 구현한 술을 맛봄으로써 인간 실격이라는 책에 대해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됐다. 서용구(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책에서 언급된 술을 직접 마심으로써 작가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상상하며 책에 대한 몰입을 갖고자 청년들은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박 학생은 “술과 함께 즐길 무언가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이 됐다”고 답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

이처럼 청년들은 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한편, 독서를 자기 계발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청년들은 자기 계발의 일환으로 집중력 향상을 위해 필사를 택했다. 이들은 좋아하는 글귀나 책의 문구 등을 손으로 직접 적어 내려가며 단어와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는다. 직접 손으로 써야 하는 과정은 장시간 필사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이입하도록 유도한다. 더불어 필사는 시작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아 손쉽게 도전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서 교수는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는 과정에서 차분히 필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글귀를 적을 수 있도록 제작된 필사책



청년들은 필사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기록하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태블릿 PC나 노트 등에 여러 문장을 적어두며, 문장과 단어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청년들의 글쓰기나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좋아하던 문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글에 활용하거나, 인상 깊었던 단어를 활용하는 등 실생활에서 도움을 얻고 있다. 박 학생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고 느껴지는 시나 소설의 구절을 간단하게 적는다”며 “손으로 직접 쓰다 보면 문장을 곱씹게 되는 과정에서 차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아한다”고 답했다. 충남대학교 의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서연 학생은 “필사용 노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필사를 자주 하는 편”이라며 “그전까지는 필사를 하지 않고 그저 책을 읽는 데에 그쳤다면, 이젠 필사를 통해 책에서 읽은 내용 중 감명 깊은 구절을 기록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라이빗 독서 공간인 ‘희정서재'

책의 문장을 적어내는 필사와 더불어, 청년들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와 분리된 환경에서 더욱 책에 대한 집중이 가능한 공간을 탐색했다. 일명 책을 통한 ‘디지털 디톡스’다. 디지털 디톡스란 휴대전화나 노트북과 같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사용을 중단하는 행위다. 최근 일부 북카페는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 전자기기의 사용을 전면으로 금지하고, 입장 시 휴대전화를 필수로 반납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 북카페를 통해 사회에서 받은 피로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방문한다. 이 학생은 “책을 읽고 싶지만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방해로 인해 집중력이 부족하다”며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되는 북카페를 자주 찾는다”고 설명 했다. 나윤빈(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는 “많은 현대인은 휴대폰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긴다”며 “청년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고 타인의 연락을 의무적으로 피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점이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 북카페의 인기 요인”이라고 밝혔다.

▲북카페 ‘반월’의 내부 [사진 제공 : 반월]

디지털 디톡스를 넘어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을 찾아 조용히 책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북카페나 도서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늑한 인테리어와 고요한 분위기를 갖춘 ‘프라이빗 독서 공간’이 많은 청년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는 한 공간을 통째로 대여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청년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프라이빗 독서 공간의 경우, 사전에 해당 공간을 예약하는 시스템으로 원하는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타인의 방해 없이 오롯이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데 최적의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조용한 공간에서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청년들에 게는 좋은 수단”이라며 “청년들의 프라이빗한 독서 공 간 방문은 혼자서 편안히 책을 읽고 싶고 싶은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100세 시대가 도래하며 미래를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자기 계발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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