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도서관학과(현재 문헌정보학과) 84학번이라고 들었다. 학교생활은 어땠나.
1학년에는 학사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학교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2학년부터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 우리 학교는 다른 대학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다른 학과 학생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교수님과 학생 간의 유대관계도 깊었다. 나는 낭만과 끈끈한 정이 있는 우리 학교가 좋았다. 그래서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한성대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졸업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과학생회장을 하고 총학생회 기획부장을 맡기도 했다. 기획부장을 하면서 총학생회장 선거 공약을 만들었다. 무료 셔틀버스 운영이 바로 그것이었다. 총학생회가 출범하던 날에는 남다른 각오를 보여주고 싶어, 학생들 통학에 불편함을 주던 삼선교 포도청 담벼락을 허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당시 축제에 단순히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축제에 농아 합창단을 초청했다. 관람 자격은 ‘커플’이었다. 부모님, 친구, 연인. 누구나 ‘커플’이 될 수 있었다.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기획하는 것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 방송, 광고, 홍보에 관심이 생겼다. 6개월 정도 방송국에서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광고 이론 책들을 필사하는 등 내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Q. 학생활동이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나.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삶은 어땠나.
졸업 후엔 우연히 은행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점에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영업능력을 인정받아 본사 홍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한성대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견제를 당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학교 시절 총학생회 기획부장으로써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었다. 홍보부에 들어가, 은행이 저소득층 아이들과 결연을 하는 ‘소년소녀 가장, 꿋꿋하게 자라라’ 캠페인을 기획했다.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발상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자 상사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 후에는 회사에서도 내가 기획하고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맘껏 진행할 수 있었다.
Q 이후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많은 실패를 겪었다. 실패를 극복해낸 원동력은?
조직 안에서 견제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하자,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밖은 정글이었다. 실패를 거듭하고 많은 좌절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결국 답은 ‘기획’이었고, 브랜드 컨설팅을 시작했다. 나를 믿는 순간 확신이 생겼다. 하나씩 다시 성공해나갔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외식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동안 얻은 노하우로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팥고당’을 성공시켰다.
‘한성대’는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약점이자 강점이 되었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에는 한성대가 ‘나’를 평가절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성대에서 내 역량을 찾았다. 실패를 극복해낸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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