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년, 세월호가 가라앉은 시간 (한성대신문, 513호)

    • 입력 2016-08-03 17:00
남겨진 유가족들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세월호 사건 주요 연표
지난 416일 오후 7시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행사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노란 우의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였다. 모인 인파는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들어차있었다.
 
떠나보낸 세월호
2년 전 416일 인천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제주도를 향하던 중,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작업을 펼쳤지만, 사망자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뉴스 화면을 보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53년에 있었던 창경호 침몰사고 이후 최대의 참사였다.
정부와 해경은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시간동안 초동대응에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정부는 사건 발생 일주일 후에나 공식반응을 내놓고,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답하는 등 국민들과 유가족들에게 빈축을 샀다. 최근에는 사태를 파악하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해경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음성파일로 공개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 파일에는 필요한 정보를 보고받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양측의 대화내용이 상세하게 나타나있다.
정부는 대역을 써서 대통령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공식적인 사과를 회피하는 등 잘못된 대처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드린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민··군 합동구조팀이 편성되어 구조 활동을 계속했지만, 생존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세월호의 난항
이처럼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면서 의회 역시 정권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특별위원회 구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과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피해자 단체가 제시하는 방안이 덧붙여지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특별위원회에 대한 논의는 민간 진상조사기구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야당과 피해자 단체에서는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지닌 민간 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에서는 헌법에 어긋나는 수사기구라며 반대했다. 서로간의 대립이 치열해지자, 변호사들과 법학자들이 국회 앞에서 여당의 논리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논란은 3개월 동안 계속 되었고, 1031일에 이르러서야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활동기간 18개월 유가족 동의를 전제로 특검 후보군 추천 피해자 배·보상 문제 즉각 처리 등이다. 가장 치열했던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는 새로 만들어진 위원회에서 독립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발생한 위원회는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가라앉는 배
유가족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세월호 인양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중국 상하이셀비지 사와 인양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1월부터 선체 겉에 구멍을 뚫는 등 기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월호 인양은 본래 6월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현장상황에서 변수가 많이 발견되어 7월 말까지 연기되었다.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411월에 수색 중단이 결정된 이후, 154월에 인양에 대한 계획이 나왔지만, 여당 의원들의 반발로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특히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인양을 하면 작업 중에 피해자가 나올 수 있으니, 인양을 하지 말고 사건이 일어난 바다 주변에 추모공원을 설립하자고 발언해 유가족들의 질타를 받았다.
올해 329일에 있었던 세월호 특조위의 2차 청문회에서는 15년에 정부가 인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고 인양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해양수산부가 영국의 인양 컨설팅업체 ‘TMC’에서 인양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11월부터 5개월간 인양 가능성 검토를 이유로 인양을 지연시켰다는 지적이었다.
 
세월호는 다시 떠오를까
이렇게 세월호 사건 후 발생한 추가적인 문제들은 유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위원회 설치에만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루머들 때문에 발생한 비난 여론도 감내해야했다. 이들에게는 힘겨운 2년이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정치권에서는 만료기간을 앞둔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을 두고, 활동을 연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426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며 부정적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세월호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이 사건은 아직 사건 당시에 대한 인과관계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그동안의 세월호 선장 재판과, 최근 있었던 세월호 특조위의 특별 청문회 등에서 나온 증언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가장 중요한 승무원들의 증언 등은 이제야 확보되는 상황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2년 동안 침몰해왔던 세월호는 과연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유가족들의 슬픔이 그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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