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범죄학의 만남,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환경범죄학에서는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범죄발생의 원인과 대안을 공간에서 찾는 환경범죄학의 한 갈래가 ‘범죄예방환경설계(이하 셉테드)’다. 이 이론에서는 도시공간의 환경설계를 범죄 방어적인 구조로 바꾸어, 범죄와 범죄피해에 대한 공포심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셉테드에는 두 가지 주요 원리가 있다. 첫 번째는 ‘자연적 감시 원리(natural surveillance)’다. 어떤 공간을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해서, 범죄피해를 감소시키고 이용자들이 안전성을 느끼는 방향으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공간을 탁 트이게 설계하거나, 투명한 유리문 등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가시권을 확보하는 공간조성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담장이나 창문 면적 및 투과성, 조명, 복잡한 골목길의 가시성, 시설물의 감시방해정도 역시 포함된다.
미국의 플로리다 템파시에 가면 ‘자연적 감시’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단지의 규모, 건물의 전면, 조경 및 가지치기, 잔디 배치, 조명 등을 셉테드에 맞춰 설계됐다. 공원에 설치된 관목들은 61cm~183cm를 넘지 못하게 해 시각적 방해를 없앴다. 또 상업 주차건물은 지상 1층에, 상업시설과 소매점 등은 보행로 정면에 설치됐다. 이는 모두 자연적 감시 원리를 활용한 설계다.
다음으로 ‘접근통제의 원리(access control)’가 있다. 이는 사람들을 도로, 보행로, 문 등을 통해 일정한 공간으로 유도하면서 잠재적 범죄자의 진출입을 차단해 범죄를 예방하는 원리다. 출입구에 경비실을 설치하고 차단기나 카드인식 등으로 출입통제를 하는 것 등이 이 원리에 해당하는 예다.
언뜻 ‘접근통제’는 일련의 불편을 수반하는 공간적 ‘폐쇄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김도우(대구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셉테드는 어디까지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출입구 최소화’ 전략을 주장한다”며 “이것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수상한 사람들의 침입을 차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감시와 통제를 활용한 범죄예방은 쉬운 해법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한 범죄학 기법이 아니다. 셉테드에서는 ‘자연적 접근’에 보다 무게를 둠과 동시에, 감시와 통제의 설계를 추구한다. 또 이를 위해 공간의 전방위적인 요소를 고려한다. 즉, 범죄발생과 공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개선해야 할 공간구조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에는 범죄학·건축학·디자인·사회경제학·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접목될 수 있다.
공간 설계, 시설물 배치 등과 더불어, CCTV 같은 기계 장비 마련, 감시 인원 증강 등 셉테드에서 쓰는 대부분의 방법들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비용대비 효과를 잘 계산하는 것은 셉테드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 김도우 교수는 “셉테드 효과성 평가는 주로 비용편익분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며 “정책집행에 필요한 비용과 정책집행으로 발생하는 편익을 대비해 추정하는 것이 셉테드의 비용과 편익의 분석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범죄피해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에는 범죄피해자의 의료비용을 시작으로 여러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대부분 예방비용이 범죄피해비용을 추월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셉테드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은 또 있다. 바로 ‘공간분석’이다. 이것은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태의 범죄가 얼마나 일어나는가를 분석하여,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작업이다. 즉 공간과 범죄발생 간의 상관관계를 입증해 필요한 설계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환경범죄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범죄는 ‘인구가 밀집된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발생한다. 하지만 주거형태나 상업시설 형태에 따라 범죄유형은 차이가 있다. 이에 김 교수는 “획일적인 전략보다는 장소의 특징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셉테드는 ‘공간과 범죄학의 만남’이다. 이것은 공간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범죄에 대한 예방효과까지 부여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다만 복합적인 요소들을 통해 이뤄지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효과적인 설계를 위해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점들을 잘 이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들에 적용한다면, 범죄에 대한 위험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강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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