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다홍치마 입고 나빌레라 한복여행가 권미루 (한성대신문, 537호)

    • 입력 2018-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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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4 19:41
인터뷰 당일, 고운 연분홍빛 저고리와 남빛 치마를 입고 온 권미루 씨.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일상에서 겪는 흔한 경험 하나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한복여행가로 활동하는 권미루(37) 씨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10년 동안 장롱 속에 묻어뒀던 한복을 다시 꺼내 입은 바로 그 날이다.
그녀는 2013년, 한 모임에 나가면서부터 한복을 입게 됐다. 여느 모임과 달리, 권 씨가 가입한 모임에는 한복을 입고 활동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레 한복을 자주 입게 됐고, 한복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그녀는 한복을 직접 디자인해 입기 시작했다. 치마 길이를 짧게 디자인해 활동성을 높였고, 원단을 구해 세상에 오직 한 벌뿐인 그녀만의 한복을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한복을 여행복으로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녀는 주저 없이 한복을 입고 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나들이를 간다는 생각으로 국내 여행을 시작했어요.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시작으로 점차 여행 횟수를 늘려갔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전주예요. 제가 여행했던 당시에는 한복 대여점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혼자 한복을 입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저를 문화해설가로 오해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녀의 한복여행은 국내 여행에서 그치지 않았다. 2014년 2월, 그녀는 한복을 입고 이탈리아 로 떠났다. 권 씨는 여행 내내 현지 날씨에 적합한 한복을 선택해 입고 다녔다.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할 때는 토끼털을 붙인 겨울 한복을 입었고, 날씨가 따뜻한 남부지역을 여행할 때는 상대적으로 얇은 봄 한복을 입었다. 그녀의 한복 여행기는 SNS상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은 그녀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한복문화활동가 권미루씨가 한복을 입고 히말라야에 등반한 모습이다.

“어느 날 친구가 ‘한복 입고 히말라야도 갔다 와보라’며 한마디 툭 던지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이 계속 맴돌더라고요. 한복을 입고도 히말라야의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을지, 등산할 때 한복을 입으려면 어떻게 입어야 할지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2014년 10월에 떠난 히말라야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터넷에서 사전 조사를 하려 해도 한복을 입고 히말라야에 오른 역사가 없어 참고할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남들은 불가능할거라 말했지만, 그녀는 직접 해내겠다는 오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히말라야는 고도에 따라 기온 차이가 커서, 출발할 때 사계절 한복을 모두 챙겨가야 했어요.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는 보온을 위해 면 저고리를 껴입었고, 등반할 때는 안전을 위해 속치마 안에 한복 바지를 입고 등산화를 신었어요.”
그녀는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2015년에 한복여행가를 모집해 <한복여행사진전>을 열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열어 자금을 마련했고, ‘한류문화인재단’에서 후원도 받았다.
그녀는 한복을 입기 시작한 후로 자신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복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도왔고,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녀는 한복을 입으며 ‘나도 특별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한복을 입기 전에는 남을 많이 의식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개성이 넘치는 한복을 입고 낯선 사람 앞에 서다 보니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 됐어요.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과 트렌드를 좇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오히려 천천히 흘러가는 것, 변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저는 그중 하나가 한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동안 꾸려온 전통문화 프로젝트 그룹 ‘한복여행가’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녀에게 ‘한복여행가’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앞으로도 우리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는 <한복여행사진전>도 그러한 이유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한복을 입고 다니며 우리의 전통을 알리고 향유하는 권미루 씨. 그녀의 한복 사랑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주될까? 그녀의 내일이 더욱 궁금해진다.

정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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