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자 숫자 풍선 들기 귀찮아서 머리에 낀 황정민처럼(숫자 ‘0’ 모양 풍선에 머리를 우겨넣은 배우 황정민 사진과 함께)’, ‘대충 살자 베토벤 높은음자리표처럼(베토벤이 성의 없이 그린 높은음자리표 그림과 함께)’, ‘대충 살자 귀가 있어도 관자놀이로 노래 듣는 아서처럼(만화 <내 친구 아서>의 주인공 아서가 관자놀이에 헤드폰을 착용한 장면과 함께).’
최근 SNS에서는 유머러스한 이미지와 함께 ‘대충 살자 (무엇을 하는) 누구처럼’과 같은 형식의 문구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이는 한 트위터 유저로부터 시작돼 페이스북으로 전해졌고, 일명 ‘대충 살자 시리즈’로 유행했다. 대충 살자 시리즈의 유행은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맥주회사는 대충 살자 시리즈를 패러디한 상업 광고를 내걸어 주목 받았다.
처음 ‘대충 살자’를 외친 이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대충 살자 시리즈가 내포하는 것은 단순한 유머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학교 또는 직장에서 끝없이 ‘노오력’ 해야 하는 2030세대의 자조 섞인 목소리와 소심한 저항이 담겨 있다.
실제로 대충 살자 시리즈를 접한 일부 네티즌은 “ㅋㅋㅋ대충 살자!”, “대충 살자…시험기간인데 휴대폰만 하는 나처럼…ㅎ” 등 단순히 웃어넘기는가 하면, “요즘 이런 마음가짐도 괜찮을 거 같아. 너무 골몰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진짜 대충 좀 살아보자” 등 ‘대충 살자’는 말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충 살자’고 선언하면서도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왜 ‘대충 살자’에 열광할까? 사실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대충 사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대충 살아본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기에 ‘대충 살자’는 말로 위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충 살자’가 유행하던 와중에 그와 대비되는 ‘열정적으로 살자’가 급부상했다.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가 지난해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는 명언(?)을 남긴 것이 최근 재조명되면서 열정 대세에 불을 지폈다. 이른바 ‘유노윤호식 세뇌법’이다.
SNS에서 널리 공유된 유노윤호식 세뇌법이란 나태해진 자신에게 “나는 유노윤호다. 살아있음에 매 순간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역경 따위 가볍게 뛰어 넘어주지. 나는 지치지 않는 유노윤호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는 것이다. ‘열정 만수르’ 유노윤호에 빙의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다.
‘열정페이’에 지쳐 대충 살기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유노윤호식 세뇌법을 말하며 다시 열정을 충전하는 모습은 왠지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대충 살자’와 ‘나는 유노윤호다’ 모두,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승화하며 훌훌 털고 일어서겠다는 반어적 표현이 아닐까.
강예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