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전시’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 국내·외 작가들의 휘황찬란한 작품을 감상하며 단순한 시각 정보로 즐기는 전시를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전시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존의 틀에 박힌 전시에 배움을 더하는 전시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오는 12월 2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세종 즉위 6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름 모를 시집이 길게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뿜어내는 이 시집의 제목은 『봉사조선창화시권』이다. 제목부터 생소한 이 책은 이번 전시회의 백미라고 칭할 정도로 세종 시대 문화를 상징하는 시집이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15세기 무렵 사대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를 음미하고 있다보면 마치 자신이 당대 사대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시에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석본이 비치돼 있어 한자를 읽을 줄 몰라도 부담 없이 시집을 읽을 수 있다. 시집을 쭉 읽다보면 명나라 사신 예겸이 남긴 “그대와 하룻밤을 이야기하는 것이 10년 동안 글을 읽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나온다. 당시 문화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친필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집현전 학사들의 필체와 인장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특별하다.
맞은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쓰인 책이 있다. 이 책은 『월인석보 권20』으로, 한자로 기록된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이다. 이는 당대 한글이 갖고 있던 사회적 입지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다. 특히, 『월인 석보 권20』은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로 널리 알려진 『세종어제 훈민정음』보다 실용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기현(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문자는 그것이 사용돼야 문자로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당시 민중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그대로 반영해 쓰여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러 차례 전쟁을 겪은 결과, 조선 초기 문화재는 현대까지 전해지는 것이 많지 않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우리나라에 인재가 많이 나오기로는 세종 때보다 성대한 적이 없었다”고 언급했는데, 이 전시회를 다녀오면 정조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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